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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2년 전 칼럼을 다시 읽는 이유

중앙일보 2015.10.24 00:29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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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2014년 1월 13일자 뉴욕타임스 사설을 다시 읽었다. 그땐 멍청한 사설이라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선견지명이었던 까닭이다. 사설 제목은 '정치인과 교과서(Politicians and Textbook)'다. 일본과 한국의 두 정상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교과서에 반영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는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을 때였다. 사설은 아베 총리가 교육장관에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과서만을 승인하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우리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군불 연기만 피어 오르고 있었다. 사설은 박근혜 대통령이 친일파들의 부역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서술한 새 교과서를 승인하라고 교육장관을 압박했다고 썼다.

 뉴욕타임스가 어찌 역사 왜곡과 역사 논란도 구별하지 못할 수 있을까 의아했었다. 그래서 당시 쓴 칼럼(중앙SUNDAY 2014년 1월 19일자)에서 그걸 지적했었다. 설령 두 정상이 숨기고 싶어하는 건 맞을지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난징 대학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경력과 어찌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전자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요, 후자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 아닌가.

 우리 대통령이 억울하겠다고도 썼다. “가뜩이나 일본 정부 하는 짓이 가당찮아 욕하고 있는데 ‘너희들도 마찬가지야’라는 비아냥을 들은 셈이 됐으니 말이다.”(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레이저빔이 겁났을 거라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멍청한 건 나였다. 멍청하리만큼 순진했던 거다. 설마 우리 정부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까지야 할까라고 믿었던 거다. 뉴욕타임스 사설이 얘기한 그 교과서가 우파적 시각 때문이 아니라 오류와 부실투성이의 형편없는 품질 탓에 외면된 뒤 국정화로 정책(또는 한 개인의 생각)이 급선회하고 있던 걸 몰랐던 거였다.

 그 후 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상황은 오히려 반대가 돼버렸다. 일본은 부끄러운 역사를 가감 없이 기술한 교과서와 그것을 숨기고 지운 교과서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국가가 지적 소유권을 가진 단일 교과서로 아이들이 역사를 배우게 됐다.

 뉴욕타임스 사설의 결론은 “한·일 양국에서 교과서를 개정하려는 위험한 노력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을 방해하며 위협하고 있다”였다. 다행히 그 사설을 비웃으며 쓴 내 칼럼도 결론은 같았다. “진짜 큰 문제는 이제 시작되려는 참이다. (…) 결론적으로 말하지만 국정교과서로 돌아가는 건 절대 불가한 일이다. 국정이 된다면 그야말로 뉴욕타임스 사설이 말하는 사태가 벌어질 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입맛에 맞게 교과서에 조미료가 쳐질 게 뻔하지 않겠나.”

 거기에 덧붙였던 말들을 다시 읽어 보니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대로 옮겨봐야겠다. 관심 있는 독자들이 검색하는 수고를 덜어주자는 것일 뿐 절대 거저먹자는 의도가 아니니 오해 말기 바란다.

 ≪좌우 이념 대립은 차치하더라도 어찌 국가의 판단이 늘 옳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권력이란 칼은 가장 큰 만큼 가장 위험한 것이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제임스 매디슨이 일찌감치 경고한 것처럼 말이다. “인류 문명이 시작한 이래 인민의 자유가 박탈된 사례는 갑작스럽고 난폭한 강탈보다는 권력을 쥔 자들의 점진적이고 은밀한 침해에 의한 것이 더 많다.”

 매디슨은 건국 초기의 갈등 속에서 연방주의 원칙을 지키되 각 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중도 노선을 관철한 인물이다. 그의 철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국가가 아무리 많은 자원을 가졌다 하더라도 여러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다양성의 힘을 넘어서기란 어려운 일이다. 수준 미달을 도태시키는 것 또한 다양성의 힘이다. 그것은 몽테스키외가 말했다. “국토는 그 비옥함에 비례해서 경작되는 게 아니라, 그 자유에 비례해서 경작된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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