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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쓰레기통 버린 프로포폴 재사용, 죽음 부른 성형수술

중앙일보 2015.10.23 02:31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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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게 병원에 걸어 들어왔던 20대 여성이 이틀 만에 죽었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딸만 바라보던 어머니는 앞으로 어떻게 살겠어요. 안 그래요? 진실을 꼭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죄송해요…. 사실은 쓰레기통에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진술녹화실에 앉아 가만히 바닥만 쳐다보던 간호조무사 최모(30·여)씨가 바싹 마른 입을 뗐다. 지난 2월 김모(29·여)씨가 서울 강남의 A 성형외과에서 안면지방이식수술(일명 동안수술)을 받다 이틀 만에 패혈증으로 숨진 지 3개월 만이었다. 수차례에 걸친 우리 의료수사팀 팀원들의 설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은 참담했다. 당시 수술에 참여했던 의사 정모(37)씨와 간호사 장모(27)씨가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지 1주일이 지난 50㏄짜리 프로포폴(수면마취 유도제)병 내용물을 긁어모아 환자에게 재사용했다는 얘기였다. 환자들은 밀려 있고, 프로포폴은 바닥이 나자 임시방편으로 쓰레기통을 뒤졌다는 간호조무사의 얘기에 우린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우리 팀은 프로포폴 오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건강했던 김씨가 프로포폴을 맞고 난 뒤부터 고열과 저혈압으로 쇼크 상태에 빠졌다고 김씨 친구는 진술했다. 지난 4월 성형외과 수술실을 압수수색했을 때 냉장고에서 쓰다 남은 프로포폴이 발견되기도 했다. 김씨 사고가 있기 사흘 전 같은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맞았던 중국 의료관광객 K(20·여)도 같은 증상으로 대학병원 신세를 졌다.

 다행히 K는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지만 김씨는 패혈성 쇼크가 장기부전으로 이어져 사망했다. 병원 측에서 상태가 위중한 김씨를 119 구급차가 아닌 간호사 승용차로 이송한 것도 김씨에겐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의사 정씨는 “수술이 잡혀 있어 김씨 이송에 동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수액·산소공급 장치가 있는 구급차로 이송을 했다면…. 조금만 더 응급처치가 빨랐다면….

 김씨 사건을 맡은 뒤 우리 팀원들은 프로포폴 관련 자료와 주의사항, 사용지침을 모았다. “팀장님. 프로포폴의 원료가 뭔지 아세요? 콩이래요, 콩. 그래서 세균 감염이 쉽답니다. 한 번 뜯으면 여섯 시간 안에 한 사람에게만 사용돼야 한다는데요?”

 이제 웬만한 수술용어, 의학용어들은 상당한 수준까지 익혔다. 의료사고 과실을 입증하려면 우리도 그들만큼 전문가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종 자료와 간호조무사 최씨의 진술 등을 근거로 김씨의 사망이 오염된 프로포폴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성형외과 폐쇄회로TV(CCTV)를 수십 차례 돌렸을 때였다.

 “선배님. 이거 자동주입기에 꽂힌 주사기 좀 보세요. 남아 있는 프로포폴이 별로 없는데요?”

 “어? 이거 다시 한 번 돌려봐. 김씨 수술에 쓰인 게 50㏄ 프로포폴 바이알(주사용 약병)이지?”

 영상 속 주사기에는 프로포폴이 거의 없었다. 수술을 시작할 때 새 프로포폴 병을 사용했다면 주사기에 프로포폴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수술 시작 전인데도 양이 많지 않다면 이미 다른 환자에게 쓰고 남은 프로포폴을 다시 사용했을 가능성이 컸다. CCTV에는 쓰레기통 앞을 서성이는 의료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쓰레기통에 버린 프로포폴 병을 다시 사용했다”는 간호조무사 최씨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었다.

 우리는 성형외과 측이 마약류인 프로포폴의 입출고 내역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장부를 조작한 혐의도 확인했다. 이 같은 증거 자료들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 감정기관으로 보냈다. 감정 결과를 기다리며 몇 주가 흘렀다. 드디어 의료수사팀 앞으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 결과가 도착했다.

 ‘오염된 프로포폴 재사용에 의한 의료진의 과실이 인정된다’.

 이에 대해 의사 정씨는 “프로포폴을 재사용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감정 결과가 그렇다면 프로포폴이 오염된 부분은 사실일 수 있겠다. 하지만 직원들이 알아서 한 것이다.” 간호사 장씨와 간호조무사의 진술은 달랐다. “의사 선생님이 지시한 대로 프로포폴을 재사용했습니다.”

 우리 팀은 지난 19일 서울중앙지검에 다음과 같은 송치의견서를 보냈다. ‘의사 정씨와 간호사 장씨는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 의견임’. 우리는 앞서 의사 정씨와 간호사 장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피해자 측과 합의했다”는 이유였다. 지난 2월 병원 측이 2억원을 주고 피해자 김씨의 부모와 합의한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지난 8개월간의 수사는 이제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그 옆 서울중앙지법 건물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 젊은 여성의 느닷없는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기원했다.

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수사팀과 피해자 가족 등을 취재한 결과와 수사 기록 등을 토대로 의료수사팀 장차규(41) 경사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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