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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리포트 24] 기저귀 갈고 욕창까지 살피며 간호 ‘허리 끊어지는 9시’

중앙일보 2015.10.20 01:54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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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이 목욕을 위해 환자를 목욕침대로 옮기고 있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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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머리를 감겨 주는 것도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하는 일이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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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 병동을 취재한 본지 김선미 기자(왼쪽)도 환자와 산책에 나섰다. [조문규 기자]

지난 9일 오전 7시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과 92병동. 9213호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90세 할머니를 간호사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패혈증으로 입원한 할머니는 새벽녘 산소포화도가 낮아지면서 위독한 지경까지 갔다가 겨우 고비를 넘긴 상태였다. 간호사들은 “찾아오는 자식도 없이 요양원에서 외롭게 지내신 할머니”라며 안타까워했다. 서울의료원은 2013년부터 간병인이나 보호자 대신 간호사 등 전문 간호 인력이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포괄간호서비스를 실시해 왔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은 간호뿐 아니라 식사 수발, 용변 처리, 목욕 등 간병 서비스도 제공한다. 9213호 할머니처럼 보호자 없는 환자에겐 간호사가 ‘딸’이 돼 주고 있는 것이다.

간병인·보호자 대신 24시간 돌봐
복도 곳곳 병실 살피는 볼록거울
오전 7시 튜브로 영양제 주고 양치
점심은 구내식당서 20분 만에 해결


 병실들이 늘어선 복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벽 곳곳에 달려 있는 볼록 거울이다. 환자들이 보호자 없이 혼자 움직이려다 낙상 등 사고를 당하자 간호사들이 편의점 도난방지 거울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볼록 거울을 통해 병실 안의 모든 환자를 볼 수 있다. 김남희 수간호사는 “실제 거울을 단 이후 낙상 사고가 절반 정도 줄었다”고 전했다.

 ‘데이(day·오전 7시~오후 3시) 근무’를 맡은 간호사들은 아침 배식 준비로 업무를 시작한다. 음식물 섭취가 어려운 환자는 코와 위를 연결한 레빈 튜브(levin tube)로 단백질과 섬유소 등이 혼합된 영양제를 공급받는다. 이때 청진기를 환자 배에 대고 공기방울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해야 한다. 김신진(38) 간호사는 “영양제가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 50병상이 있는 92병동에선 간호사 한 사람당 8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환자들의 식사와 양치를 챙기고 나면 간호사들이 ‘허리가 끊어지는 9시’로 부르는 기본 간호가 시작된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2시간마다 병실을 돌며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의료 및 간병 활동을 하는 것이다. 여기엔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세를 바꿔 주거나 기저귀 가는 일도 포함된다. 간호사 이보람(28)씨는 “2시간 안에 모든 환자를 다 보려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이 병동에는 가족의 간병을 받기 어려운 환자가 많다. 9210호에 입원한 외국인 레오나르도(35·필리핀) 같은 경우다. 올해 한국에 입국해 강남의 한 호텔에서 기타를 연주했다는 레오나르도는 두통과 고열로 병원을 찾았다가 림프암 진단을 받았다. 필리핀에 있는 부인과 가족은 한국에 오기 어렵다. 레오나르도는 “간호사들이 한국말 못하는 나를 위해 몸짓으로 설명해 준다”며 “가족이 없어도 충분히 간호를 받고 있다”고 했다.

 오전 11시30분. 정해진 점심시간이 따로 없는 간호사들이 짝을 나눠 20분 만에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고 왔다. 그야말로 ‘흡입’을 하고 왔지만 여기저기 찾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고 허리 아파.” 환자의 비명에 9203호 병실로 간호사가 달려갔다. 창 쪽으로 몸을 돌려 달라는 환자를 돌려 주고 나니 물을 달라는 환자, 팔의 위치를 바꿔 달라는 환자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12시30분부터 시작되는 점심 배식 전엔 레빈 튜브를 단 환자들의 가래도 뽑아야 한다. 투명한 관을 삽입해 가래를 빼내던 한 간호사는 옆에 서 있던 기자를 걱정한다. “비위 괜찮으세요? 저희야 가래 뽑은 직후에도 밥 잘 먹지만….”

 오후 2시부터 다시 기본 간호가 시작된다. 이때는 목욕이나 샴푸뿐 아니라 각종 검사와 치료, 약물 처방 받기까지 해야 한다. 업무가 쏟아지지만 틈 날 때마다 환자들과 산책하며 말벗이 되는 일도 잊지 않는다. 간경화로 세 차례 입원했다는 김경옥(34)씨는 “병원에 올 때마다 우울하지만 간호사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 면 수다쟁이가 된다”고 했다.

 저녁 배식을 마치고 기본 간호를 한 번 더 돌고 나면 보호자가 돌아가야 하는 오후 9시다. 환자를 두고 떠나는 가족들은 안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직검사를 앞둔 노모를 보러 온 보호자 윤헌숙(54)씨는 “한밤중에도 벨을 누르면 간호사들이 빠르게 달려와서 ‘KTX 언니들’로 부른다. 감사함과 미안함이 늘 교차한다”고 했다.

 밤에도 간호사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졸음이 쏟아질 때면 블랙커피 믹스 3봉지를 종이컵 한 잔에 타서 마신다. 언제 응급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된 지 갓 1년 됐다는 문지혜(25)씨는 “사실 밤 근무 중엔 긴장해야 할 일이 잦아 잠이 올 때보다 정신이 또렷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는 현재 80곳인 포괄간호서비스 병원을 올해 말까지 100곳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 사태 후 우리의 간병 문화가 신종 감염병을 급속히 확산시킨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포괄간호서비스의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간병에 대한 환자 본인부담금도 종합병원 기준 1만8130~2만 2150원으로 경제적이다. 하지만 포괄간호서비스를 감당할 간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간병까지 해야 하는 간호사들은 고된 업무 강도에 고통을 호소한다. 이인덕 서울의료원 간호부장은 “선진국의 경우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비율이 1대 4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최소 1대 7로 규정하고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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