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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김정일 “날림” 경계했는데 … 건설 속도전 벌이는 김정은

중앙일보 2015.10.20 01:42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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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변의 미래과학자거리에 53층 초고층 아파트, 공공건물 등이 들어서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현지지도를 하다가 마음에 들면 즉석에서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가 풀어놓는 선물 보따리에서 1호는 바로 살림집(주택)이다. 지난 7월 평양 채소과학연구소의 온실들을 둘러봤을 때다. 그는 “정말 멋있다. 온실 바다를 보는 것만 같다”며 과학자들을 극찬했다. 이어 “과학자들이 생활상의 문제를 원만히 풀어주어야 연구를 잘할 수 있다. 과학자들에게 살림집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김정은의 선물 1호는 살림집
대동강변 미래과학자거리 공사
평양 스카이라인까지 바꿔
북 주택 시장 ‘돈주’들이 이끌어
낡은 집 많아 리모델링도 급해


 평양은정과학지구의 위성과학자주택지구, 김일성종합대 교육자 살림집도 이런 과정을 거쳐 공사가 시작됐다. 위성과학자주택지구는 2012년 12월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를 성공시킨 과학자들이 입주할 살림집이다. 공원, 병원, 학교 등이 갖춰진 종합주택지구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10일 열병식에서 97차례나 ‘인민’을 언급했다. 김정은 식 인민제일주의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주택을 인민의 기초로 여기고 있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그는 “건설은 강성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인민들의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는 중요한 전선”이라고 말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건설부문에서 조선속도의 불길을 세차게 일으켜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등 기념비적 창조물을 수많이 일떠세웠다”고 자평했다.

 김정은 시대의 각종 건설사업 중 대동강 기슭에 건설 중인 미래과학자거리는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겠다는 대형 프로젝트다. 53층 초고층 아파트와 공공건물, 사무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 제1위원장은 이 거리를 건설하기 위해 인민군 제521건설사단을 특별히 파견했고, 미래과학자거리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다. 전용기를 타고 건설 현장을 시찰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지난해 9월부터 공사를 시작한 미래과학자거리는 지난 10일 당 창건 70주년에 맞춰 2단계 공사를 마쳤다. 김 제1위원장은 “미래과학자거리건설장은 70년대, 80년대의 건설전투장을 방불케 한다”며 “이곳에서 평양정신, 평양속도가 창조되고 있다”고 대만족을 표시했다.

 하지만 속도전은 언제나 대형참사를 부를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5월 이미 속도전의 폐해를 경험했다. 평양시 평천구역 23층 아파트가 붕괴돼 주민의 상당수가 숨지고 중경상을 입은 기억이 있다.

 김 제1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만해도 생전에 속도전을 경계했다. 그는 “지난 시기에 속도전을 벌리면서 건설 공정별 요구를 제대로 못해 건설물의 질을 떨어뜨리는 현상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구체적 타산도 없이 기념일에 맞춰 공사를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무슨 기념일이요, 무슨 전투요 하면서 속도전을 벌이는 바람에 공법의 요구를 어기고 날림식으로 적당히 하는 버릇이 없어지지 않는다. 건설을 날림식으로 하는 것은 당의 의도에 맞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 건설물의 질을 관리하는 기관인 국가건설감독성에 종합검사와 준공검사를 엄격히 할 것을 지시했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노동당 창건 70주년에 맞춰 대규모 건물들을 완공한 김정은 시대의 속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떻든 시대가 달라졌다. 김정은 시대는 속도전이 대세다.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북한 주택 시장은 ‘돈주(신흥부자)’들이 이끈다. 기관의 이름으로 건설이 진행되지만 ‘돈주’들이 실질적인 건설주다. 북한엔 주택 신규 공급은 물론 노후주택에 대한 리모델링도 절실한 상황이다. 북한 인구(2400만 명)를 감안했을 때 총가구수는 600만 호로 추정된다. 국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이 가운데 280만 호가 노후주택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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