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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로당원의 아들 고달픈 삶, 물로 치유하고 싶었다

중앙일보 2015.10.20 01:10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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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만들어졌던 구도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작가 한승원씨. 한국전쟁의 비극을 소재로 한 장편 『물에 잠긴 아버지』(아래)를 출간했다. 물로써 화해하자는 의미다. [사진 문학동네]

한국 작가는 빨리 늙어 나이 들면 열심히 쓰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진단이 그에게는 성립하지 않는다. 1939년에 태어나 올해 희수(喜壽·77세)인 소설가 한승원씨는 그만큼 뜨거운 창작 열정으로 인생 후반부를 물들이고 있다.

한승원 새 장편 『물에 잠긴 아버지』
자신의 체험 더해 만든 주인공
“시대의 아픔 화해하고 승화되길”

명창 임방울의 일생을 추적한 장편 『사랑아, 피를 토하라』, 장편 구도소설 『사람의 맨발』(이상 2014년) 등 최근 몇 년간 그의 소설 출간 캘린더는 잠시도 빈 적이 없을 정도다.

한씨가 새 장편소설 『물에 잠긴 아버지』(문학동네)를 내놨다. 한국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온 가족을 잃다시피 한 무서운 상처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온 70대 사내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묵직하고 가슴 시린 소재다.

 19일 기자간담회. 한씨는 “작가는 나이 들수록 성난 얼굴로 자신의 소설 문장을 바라봐야 한다. 감수성이 둔해지지는 않는지 늘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번 소설은 어떤 면에서 젊은 시절 자신의 소설보다 훨씬 감성적이라고 했다. 최선을 다했다는 떳떳함, 양보 없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소설의 주인공 김오현은 남로당원이었던 아버지가 고향 마을의 인민위원장을 맡아 이념 숙청을 자행한 뒤 전세가 뒤집혀 세상이 바뀌자 아버지 자신은 물론 할머니·어머니에 네 형까지 몰살을 당하는 기막힌 운명에 처한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했거나 추체험한 전쟁 직후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스토리다. 한씨는 "우리 문단에도 이념 전쟁의 피해를 입은 작가들이 여럿"이라고 말했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한국인의 공통적인 비극에 한씨 자신의 체험을 덧붙여 분신처럼 만든 인물이 바로 김오현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가령 아버지가 남로당원이었던 작가는 한국 문단에 여럿”이라고 했다. 김원일·김성동·이문열 같은 이들이다. 또 한씨 자신의 가까운 촌수 친척 중에 이념의 희생자들이 더러 있다고 털어놓았다.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만큼 이념의 상처는 여전히 생생한 진행형이라는 얘기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오현은 할아버지가 키운다. 무섭고 광막한 세상천지에 할아버지와 철 모르는 손자 두 사람만 남은 끔찍한 상황.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가능한 한 손자 오현을 빨리 장가보내 최대한 자녀를 낳도록 하는 일. 대를 이어야 한다는 ‘맹목’이 인생의 목표가 된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2학년 손자를 장가보내기 전날, 얼마든지 혼자서 씻을 수 있는데도 손자의 사타구니며 생식기, 항문을 손수 씻어주는 대목은 눈물겹다.

한씨는 오현 집안의 기막힌 비극이 벌어진 무대가 자신의 실제 고향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고향인 전남 장흥의 유치면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접수한 채 무장투쟁을 벌여 아예 ‘모스크바’로 불렸단다. 그런 고향 마을은 2006년 장흥댐 건설로 수몰됐다. 소설 제목을 ‘물에 잠긴 아버지’로 붙인 이유다.

한씨는 “결국 김오현의 삶을 통해 얘기하려는 것은 화해의 의미”라고 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어떤 형태로든 승화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에 잠긴 오현의 비극이 물에서 용해돼 화엄세상으로 나가는 게 승화의 방식 아니겠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한씨는 “다음 작품으로 재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쓸 생각”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섬에서 뭍으로 시집 와 모두 11남매를 낳았다.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오현이 낳은 자녀도 11명이었다.

“글을 쓰는 한 나는 작가로서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 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 한씨는 “나의 생물학적 생명과 작가로서의 생명 중 하나만 무너져도 내 삶은 끝난다”고 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고향마을 토굴 바람벽에 ‘광기(狂氣)’라는 두 글자를 붙여 놓았다”고도 했다.
싱싱함을 잃지 않는 한씨 노년의 문학의 비밀이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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