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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야구판 흔드는 도박 파문 … 삼성의 침묵은 옳은가

중앙일보 2015.10.20 00:45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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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감독

프로야구 규칙 1.02는 ‘팀의 목적은 상대보다 많이 득점하여 승리하는 데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5년 삼성 라이온즈는 야구팀의 목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신뢰 회복’이다.

의혹 선수 2명 팀 내 핵심 전력
팬들 “명문답게 단호한 대응” 요구
닷새째 “상황 파악 중” 되풀이

 명문 구단 삼성이 도박 스캔들로 휘청거리고 있다. 소속 선수 2명이 마카오에서 수억원 대의 불법 도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으나 구단은 이에 대해 닷새째 묵묵부답이다. 삼성 구단 관계자는 19일 “현재로서는 수사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혐의를 받고 있는 선수들을 포함해) 선수단 전원이 정상적으로 훈련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 선수들의 해외 도박 의혹이 불거진 건 지난 15일이었다. 이후 삼성은 “상황을 파악 중”이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삼성은 해당 선수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이미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이 누명을 썼다면 구단이 나서 적극적으로 해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침묵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혐의 사실을 확인·발표하기 전까지 자체 징계를 내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삼성은 해당 선수들을 26일 시작하는 한국시리즈(KS)에 출전시킬 예정이다.

 삼성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동안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내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이미 해당 선수들의 금융 계좌와 통신 내역, 출입국 기록 등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모르겠다. KS가 끝나면 선수들을 소환조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 선수들의 도박 스캔들로 프로야구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가 플레이오프를 벌이고 있지만 야구 팬들의 관심은 도박 스캔들에 쏠려 있다. 그러나 삼성은 KS를 더 생각하는 것 같다. 삼성은 사상 최초로 5년 연속 KS 우승을 앞두고 있다. 불법 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선수들은 삼성의 핵심 전력이다. 이들 없이 삼성이 우승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삼성 구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구단이 먼저 징계를 내린다면 소속 선수들의 혐의를 인정해 이름을 공표하는 꼴이 된다. 그렇다 해도 삼성의 긴 침묵은 당당하지 못하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불법 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면 여론은 달라졌을 것이다.

 현재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삼성 팬들조차 “지금 중요한 건 우승이 아니다. 명문 구단답게 삼성은 도박 파문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삼성은 KS에서 우승하더라도 축하를 받기 어렵다. 무엇보다 최고 수준의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삼성 그룹의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난 2008년에도 프로야구 선수 16명이 불법 인터넷 도박을 벌여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 가운데 13명이 삼성 선수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당시 채태인(33·삼성)에게 5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2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삼성 구단은 이듬해 그의 연봉을 대폭 삭감했다. 이후에도 삼성 선수들이 불법 도박을 즐긴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은 불법 도박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 4년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그늘 아래 도박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삼성 구단의 위기관리에 문제가 있다. 선수들이 혐의를 받는 현재 상황만으로도 구단은 사과부터 했어야 한다”며 “불법 도박을 한 선수들을 KS 엔트리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도 우승한다면 삼성은 박수를 받을 것이고,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한국 스포츠의 본보기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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