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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양극화나 불평등을 세금으로 다스릴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5.10.20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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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NPO공동회의 공동대표

영국 속담에 “Penny wise, pound foolish”라는 말이 있다. 1페니는 100분의 1파운드다. 우리말로는 “한 푼 아끼려다 열 냥을 잃는다”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작은 것을 챙기려다 큰 것을 놓친다는 뜻이다.

 우리말에도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다.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을 줄인 정부의 세법 개정이 바로 이 속담의 케이스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2013년 세법을 개정하면서 기부금에 대해 종전의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꾸어 기부자들, 특히 중산층 이상의 고액 기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 효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2014년도분 소득세에 대한 연말정산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차츰 그 심각성이 뚜렷해지고 있다. 우선 복지·구호 단체에 대한 후원자들이 줄어들어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다니며 일하고 있는 구호·복지단체들마다 사업을 위한 모금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주요 모금기관의 경우 올 들어 후원자가 지난해 동기 대비 42%나 감소했다는 신문 보도는 가위 충격적이다. 한국재정학회가 기부금 관련 세법개정에 따른 효과를 추산한 바에 의하면 세금이 1년에 약 3057억원 더 걷히는 반면, 기부금 총액은 2조 376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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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기부금에 대해 세제혜택을 줄인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무엇보다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고, 자칫 기부금에 대한 세금혜택이 부자들한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금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세금이 최선의 기부”라며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 축소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우리는 세금과 달리 기부·나눔이 갖고 있는 기본 성격과 가치를 곰곰이 따져볼 필요를 느낀다. 세금은 정부가 거둬 복지가 필요한 분야에 쓴다. 이에 비해 기부와 나눔은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와 교육, 문화 등 공익사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목적과 대상이 뚜렷하게 다르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11조원 늘어난 387조원 규모로 짜였다. 그중 31%인 123조원이 복지 분야다. 그동안 해마다 복지예산을 큰 폭으로 늘려오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선 태부족한 상황이다. 거기에다 정치적 복지 포퓰리즘까지 더해져 벌써부터 국가 재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복지뿐 아니라 교육, 국방 등 다른 분야의 예산 수요로 재정의 부채의존도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 않은가.

 그 대안이 바로 기부와 나눔이다. 자발적 기부문화를 활성화해 민간 영역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넓혀 가면 정부의 재정부담도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없는 분야와 한계를 인정하고 민간의 자발적 역량을 동원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다름 아닌 나눔·기부 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둘째는 빈부 간 양극화로 인한 사회 갈등 해결방안으로서의 나눔·기부 문화다. 아웃소싱(outsourcing)이 당연시되는 세계화, 그리고 IT 등 첨단 기술혁신가와 소수의 자본가 등에 의해 부의 집중과 그 격차는 더욱 가속화되고, 갈수록 불평등은 심화되는 추세다. 양극화나 불평등 문제를 세금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어느 합리적 수준까지만 가능한 것이다. 그 이상이면 기업 의욕을 감퇴시키거나 자본의 해외 유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세계 1위의 부자이면서 자선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는 빌 게이츠가 지적한 대로 불평등 해결은 정부 정책 못지않게 부자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부자들로 하여금 보람을 느끼며 자발적 기부·나눔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 나눔과 봉사활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활동에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강제성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삶의 가치를 추구해서 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세금도 제대로 내고 또 나눔·기부까지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e oblige) 아니겠는가? 부자들이 칭찬받고 존경받는 길은 무엇보다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기부와 나눔에 앞장서는 일이다. 이를 촉진하려면 사회적으로 그러한 분위기와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세금을 더 거두는 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여유 있는 사람들이 이웃과 사회를 위한 기부·나눔에 적극 참여토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세제혜택 정책을 과감하게 펴나가는 일이 보다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기부문화가 발달하고 활성화되면 우리 사회의 빈부 간 갈등도 크게 완화되고 보다 행복지수 높은 사회가 될 것이다. 정부가 전지적(全知的) 작가 시점에서 모든 것을 틀어쥐고 도맡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
NPO공동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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