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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역사 교과서, 내용보다 기준이 먼저다

중앙일보 2015.10.20 00:24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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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중국의 역사 교과서 하면 ‘에이~’ 할지도 모르겠다. 공산정권의 교과서라는 게 ‘안 봐도 비디오’, 즉 당의 선전도구 아니냐고 생각할 거다.

 틀리지 않다. 중국의 초·중·고 역사 교과서를 보면 당과 사회주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내용이 많다. 그러나 이는 현대사에 국한된 얘기다. 중세와 고대사는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기술을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검증하는 게 필수다.

 중국의 역사 교육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중국이 어떤 교육을 하든 그들의 자유다. 다만 우리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보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말하고자 함이다.

 중국의 역사 교과서는 국정이 아니다. 출판사가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부 심사만 통과하면 어떤 학교든 채택해 쓸 수 있다. 최소한 겉으론 역사 교과서의 획일성과 통일성을 피하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교과서는 국가와 중국인, 당이 원하는 역사 교육을 어떻게 보장하는 걸까. 모든 교과서가 통과해야 하는 역사 교육의 기준을 만드는 게 중국식 해법이다. 교육부가 역사 전문가들과 치열한 논쟁을 거쳐 확정한 기준은 역사 교육의 목적과 그 내용으로 나뉜다. 초·중생과 고교생 교과서에 적용되는 기준은 각각 다르다. 물론 그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처럼 좌우 이념 대립을 어떻게 중화시킬 것이냐 하는 멍청한(?) 논쟁은 하지 않는다.

 우선 고교의 역사 교육 목적은 역사의식 배양, 역사(지식이 아닌) 지혜 습득, 시야 확대, 중국과 세계 관계 이해, 역사적 사명감 배양으로 돼 있다. 이 5개 기준을 위해 교과서가 반드시 포함해야 할 내용의 기준은 9가지다. 고대 중국 정치제도, 열강 침략과 중국 인민의 투쟁, 근대 중국 민주혁명, 중국 정치 건설과 조국 통일, 현대 중국 외교, 고대 그리스 로마 정치제도, 구미 자산계급의 대의제도 발전, 과학사회주의 이론, 현대 세계 정치의 다극화 추세 등이다. 현대사 비중이 큰 것은 역사 교육의 목표를 현대와 미래 발전에 두고 있다는 함의다.

 초·중생의 역사 교육 목적은 역사(지혜가 아닌) 지식 습득, 중화민족의 자부심 함양으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시대별로 반드시 배워야 할 수백 개의 역사적 사건을 내용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적 성장의 발아기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중국의 눈과 가치관으로 세계를 보고 호흡하기 위한 밑거름, 즉 역사적 사실과 발전 과정을 먼저 익히도록 하는 교육이다. 중국과 중국인들이 왜 일본에 강경하고 미국과 세계를 논하려 하며 사회주의에 자부심을 느끼는지는 사실 이 같은 역사 교육에 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 교육을 통해 후세에게 ‘중화부흥’에 대한 자신감을 심고 그 정신적 뿌리를 배양한 결과다. 우리가 국정 교과서를 만들기 전에 역사 교육의 정의와 목적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그 내용을 논해야 한다는 충고라 할 수 있겠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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