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철호의 시시각각] 바보야, 역사책보다 인구가 문제야!

중앙일보 2015.10.20 00:23 종합 34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이철호
논설실장

올해 한국 최악의 보도는 ‘일본 대졸자 96.7% 취업 vs 한국 56%’라는 기사가 꼽힐 듯싶다. ‘헬(Hell) 조선’과 ‘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의 자기 비하가 판쳤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해를 부르기 딱 좋은 통계다. 우선 일본 후생성이 6250명만 샘플 조사한 결과다. 일본은 또 대학 4학년 때 ‘취업내정제’가 관행이다. 우리처럼 대졸 백수나 취업 재수생은 아예 조사에서 제외된다. 우리 교육부 통계와 비교하려면 일본 문부성의 전수조사가 더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70.3% vs 한국 56%’가 맞다.

 아베노믹스로 일본 고용이 다소 활력을 되찾은 건 분명하다. 우리로선 70.3%도 탐나는 수치다. 하지만 여기에는 슬픔이 숨어 있다. 그 수수께끼를 풀려면 인구 피라미드(그래픽 참조)를 봐야 한다. 지금 일본은 900여만 명의 60~64세가 은퇴 중인 반면 600여만 명의 22~26세가 구직에 나서고 있다. 향후 20년간 제로성장을 해도 일본 대졸 취업률은 더 올라가는 구조다. 그래서 70.3%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일본의 저출산·고령화가 낳은 비극이다.

 
기사 이미지
 우리의 청년실업은 복합골절이나 다름없다. 우선 대학 진학률이 80%였던 1990년대 초반생이 매년 35만 명씩 쏟아진다. 잘못된 교육정책 탓이다. 참고로 인구는 우리의 2.4배이고 경제 규모는 3배인 일본의 4년제 대졸자는 56만 명에 불과하다. 또 한국의 300인 이상 대기업 일자리는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여기에다 60세 정년 연장으로 기업들의 고용 흡수능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답이 없다. 가혹할지 몰라도 한국의 인구 피라미드를 살펴봐야 한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마무리되는 향후 5년간 청년실업은 힘든 보릿고개를 피하기 어렵다.

 어제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3차 계획에 집단 소개팅까지 깨알 같은 대책들을 담았다. 그러나 댓글들이 살벌했다. “또 노예를 낳으라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면 아예 대를 끊을 수밖에 없다.” “지금 애 안 낳으면 20년 후에 나라가 휘청하겠지요…근데 지금 낳으면 내가 휘청해요.” 젊은 세대의 푸념이자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최근 역사교과서 전쟁으로 난리법석이다. 하지만 눈 밝은 독자라면 서울우유가 직원 월급의 40%를 우유로 지급했다는 뉴스에 소름이 돋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줄자 우유 소비가 5%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미 유아용품 업체인 베비라는 도산했고, 아가방은 중국에 팔렸고, 해피랜드만 남았다. 저출산의 악몽이 시작된 지 오래다. 우리 신생아는 70년에 100만 명으로 꼭지를 찍고, 80년대 70만 명→90년대 65만 명→2000년대 45만 명→지난해 43만 명으로 곤두박질했다. 일본은 2007년에 사망자가 신생아를 추월했다. 우리도 2028년 똑같은 운명을 밟는다. 언젠가 한국에도 일본 아소 부총리처럼 “죽고 싶은 노인은 빨리 죽게 하라”는 저주가 나올지 모른다.

 지난 80년에 우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98달러였고, 프랑스는 1만2700달러였다. 당시의 꿈은 경상수지 흑자와 채권국이었다. 한국은 그 기적을 완벽하게 이뤄냈다. 올해 경제규모는 세계 11위, 1인당 GDP는 2만8338달러로 머지않아 프랑스(3만8458달러)를 따라잡을 기세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1100억 달러로 세계 3~4위, 또 채권국을 넘어 완벽한 ‘순대외 자산국’으로 변신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전히 불행투성이다.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그 상징이 결혼 파업과 저출산이다.

 돈 몇 푼 준다고 풀릴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이 낳으면 집 한 채를 공짜로 줄 수 없는 노릇이다. 독신세를 거두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공무원·공기업·교사부터 아이 2명 이상의 부부를 우선 채용하면 어떨까. 다자녀 가구에 의대·로스쿨 시험에도 가산점을 듬뿍 주고 말이다. 이대로 손 놓으면 우리 역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국가개조 차원의 대담한 발상이 절실하다. 자꾸 학생들은 증발하는데, 역사책에 무얼 담을지 싸우는 건 사치일지 모른다.

이철호 논설실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