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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격렬한 이사회를 허하라

중앙일보 2015.10.20 00:01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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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일컬어 흔히 ‘스마트 머니’라고 부른다. 돈이 지능을 가졌을 리 없지만 ‘똑똑한 돈’이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금을 투입하면서 동시에 투자 받은 기업의 경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의 경영지원은 의외로 단순하다. 투자한 이후부터 그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사회는 회사의 현재를 정확하게 점검하고, 미래 방향을 잡아 나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리이다.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해 이사회에서 조준한 각도가 조금이라도 잘못 되면 실제 기업 운영의 결과에 있어서는 한참 어긋날 수 있다.

 제법 오래된 벤처이기는 하지만 일본 소프트뱅크의 이사회 장면을 살짝 엿보자. 먼저, 소프트뱅크의 사외이사는 면면이 남다르다.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유니클로의 타다시 야나이 회장, 『일본전산이야기』라는 책의 주인공인 일본전산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 등이 이사회에 참석한다.

 특히 야나이 회장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제안하는 거의 모든 이사회 안건에 대해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서 이사회장의 냉기를 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손 회장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정보통신산업에 대해서 스스로 문외한이라고 얘기하는 야나이 회장을 설득하기 위하여 늘 진땀을 빼곤 하지만 절대로 대충 넘어가자며 양해를 구하는 일도 없고 사외이사진의 의견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손 회장이 이런 설득과 토론의 시간을 쏟는 이유는 이런 과정을 통해 한번 더 계획에 대한 스스로의 검증을 거칠 수 있고 이를 통해 회사의 방향과 전략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 회장도 창업 초기부터 이사회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일본기업처럼 최고경영자로서 다소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94년 즈음에 미국의 시스코라는 통신장비회사의 사외이사를 경험하면서 이사회의 진정한 의미와 역할을 배웠다고 한다. 그 때부터 소프트뱅크의 이사회는 이미 거함이 되어 버린 소프트뱅크가 벤처정신을 기업 경영의 뿌리로 삼을 수 있게끔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해 주게 되었다.

 간혹 벤처캐피털은 수 많은 회사에 대한 투자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세련된 선진 경영기법을 동원해서 치밀한 성장전략을 짜 주거나, 도저히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영업의 묘수를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독창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도전을 하는 스타트업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화끈한 경영기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이사회의 존재와 제대로 된 운영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스타트업의 이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이사회는 늘 격렬한 토론이 오가고 열기로 가득하다.

 젊은 창업가들에게 투자 이후에 이사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자고 하면 초반에는 이를 간섭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수 차례 이사회를 개최하고 나면, 또 생각했던 초기의 계획들이 하나 둘씩 난관에 봉착하는 경험을 겪고 나면 점점 이사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오히려 이사회 소집을 먼저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은 이사회의 필요성과 그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소규모 회사에서는 역량의 부재로 인해 이사회를 운영하지 못하고 있고, 대기업의 경우에는 형식은 그럴싸하게 갖추고 있지만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기업의 전략을 함께 고민하고 격렬하게 토론할 만한 역량을 갖춘 사람들로 짜여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오직 ‘경영투명성’을 위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사외이사를 구성한 기업들이 정말 진짜로 혁신을 원한다면 스타트업의 그 격렬한 이사회를 한 번 견학해 보아도 좋을 듯하다. 그 자리의 뜨거움을 느낀다면 혁신의 뿌리가 되는 열정이 싹틀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된 혁신은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서 강의 듣고 토론 몇 번 한다고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깨달을 때도 되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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