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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심리 원천 봉쇄하는 지하철 계단의 ‘믿음 거울’

중앙선데이 2015.10.18 01:18 449호 9면 지면보기

1 13일 서울 지하철 강남역 5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우측면에 종이거울을 부착하고 시민의 동의를 얻어 실험을 실시했다. 앞서 가는 사람과 뒤따라 가는 사람이 거울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2 강남역 10번 출구 계단 측면에 시범 부착한 종이거울. 몰카를 찍으려는 사람이 계단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촬영을 중단하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했다. [사진 서울시]



#1. 대학생 이모씨는 몇 달 전 친구들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학과 조교로 일하던 남자 선배가 여학생들의 다리를 몰래 촬영하고 그 영상을 인터넷에 배포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씨는 “뉴스에서나 듣던 일이 나에게도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낯선 사람뿐 아니라 알고 지내는 사람조차 두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작은 외침 LOUD] -23 몰카 범죄 예방은 이렇게

#2. 직장인 박희동씨는 지난주 퇴근길에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됐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성이 자신을 몰래카메라 촬영 의심자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장에서 경찰이 스마트폰을 확인해 혐의를 벗게 됐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박씨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몰카 범죄자들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몰래 촬영하는 이른바 ‘몰카(몰래카메라)’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한민국이 몰카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발생한 ‘워터파크 몰카 사건’은 이런 두려움을 더욱 극대화한 사건이었습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담뱃갑 몰카, 넥타이 몰카까지 디지털 기술 발전과 함께 범죄 도구마저 진화하고 있습니다.



몰카 범죄 적발 건수는 2011년 1523건에서 2014년 6623건으로 해마다 급증합니다. 피해를 보는 사람은 대다수가 여성이지만 남성 역시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과 눈이 마주칠 경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만이라는 남학생, 혹시나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 싶어 치마 입은 여성이 계단을 오를 경우 멀리 떨어져 걷는다는 샐러리맨 남성도 있습니다.



스물세 번째 LOUD는 지하철 출입구 계단 앞에서 외쳐봅니다. 몰카 범죄로 두려움에 떠는 이들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더불어 남녀 보행자 간 신뢰를 되찾아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와 JTBC, 그리고 중앙SUNDAY가 함께 그 해법을 고민해봤습니다.



LOUD팀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범죄예방 환경 설계’라고 불리는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입니다. 중앙SUNDAY가 골목길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8월 20일자(8면) LOUD에서 제안했던 것과 같은 개념입니다. 도시설계학자 레이 제프리가 제시한 셉테드는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관리하는 것이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낡은 골목을 정비하고, 가로등을 밝히고, 벽화를 그리는 것으로도 범죄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LOUD는 몰카 범죄 역시 규제가 아닌 환경 개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를 위해 광운대 공공소통연구소는 ‘계단 거울’을 떠올렸습니다. 계단의 바닥면이 아닌 측면에 거울을 부착해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서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에스컬레이터의 경우 층계 옆 부분에 거울을 설치해 탑승자의 모습이 비치게 했습니다. 앞서 가는 사람은 뒷사람의 모습을, 뒤따라가는 사람은 앞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오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몰카를 찍으려는 사람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몰카를 들고 있는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본다면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행위가 적발될 것을 우려해 촬영을 중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 효과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13일 서울 지하철 2호선?분당선 강남역 5번 출구와 10번 출구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즉각적인 범죄예방 효과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시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여대생 최지연(23·인천 서운동)씨는 “뒷사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다”며 “설치를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직장인 이영민(35·서울 개포동)씨는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할 수 있다면 무조건 환영”이라며 “몰카 촬영을 시도하려는 사람도 주저하게 되는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표시했습니다. 몰카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하철역에서 엄격한 계도 문구 없이 서로의 모습이 비치는 거울만으로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으면 몰카 범죄를 예방하는 LOUD의 ‘계단 거울’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동영상 장종원]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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