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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다고 행복? 일정 소득 넘으면 행복감은 제자리

중앙선데이 2015.10.18 00:57 449호 18면 지면보기
돈이 많으면 돈이 없을 때보다 많은 일이 수월하다. 아플 때 병원비 걱정도 덜하고, 집 살 돈을 마련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으며,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면 다들 멈칫한다. 종교인은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돈이 불화를 일으켜 행복을 앗아가는 사례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또 내가 웬만큼 재산이 있어도 다른 사람이 더 잘 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렇더라도 돈이 한 푼도 없으면 삶이 고달플 것은 자명하다. 돈과 행복의 교차점은 어디쯤일까. 

강일구 일러스트



지난 12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했다. 2010년 프린스턴대 동료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함께 미국 과학학술원지(PNAS)에 소논문을 발표했다. 2008~2009년 미국 전역 45만 명을 대상으로 한 갤럽 설문조사를 토대로 통계를 돌려봤더니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계속 높아지지만, 행복감은 연봉 7만5000달러(8500만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연봉이 5000만원에서 6000만원, 6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높아질 때는 돈의 액수와 비례해 행복감도 높아진다. 하지만 연 8500만원 이상을 벌게 되면 연봉이 9500만원, 1억원이 돼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앵거스 디턴 노벨경제학상 수상 계기로 본 ‘돈과 행복’

이 연구결과는 학계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는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臺詞)로 나왔다. 신용카드 처리 스타트업 그래비티 페이먼트의 댄 프라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직원 120명 중 연봉이 7만 달러 이하였던 30명의 연봉을 단숨에 7만 달러로 올렸다. 회사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행복의 기준이 7만5000달러이니 비슷한 액수로 직원 모두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디턴·카너먼의 연구결과를 이렇게 단편적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의 근간이 된 갤럽 조사는 행복이라는 개념을 ‘삶에 대한 만족도(life evaluation)’와 ‘행복감(emotional well-being)’으로 나눠 물어봤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지금 나의 삶에 전체적으로 만족하는가’를 물은 것이다. 선택지로는 ‘최악의 삶(0)’부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태(10)’가 주어졌다. 반면 행복감은 설문 대상의 구체적인 느낌을 물었다. ‘어제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다음과 같은 감정을 느꼈나요’가 질문이었고, 선택지는 ‘스트레스’ ‘행복’ ‘즐거움’ ‘근심’ 등이었다.



만족도 부문에선 소득이 늘수록 계속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7만5000달러 한계설’은 행복감 부문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만족도가 더 정확한 행복의 척도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행복하다는 얘기가 된다. 디턴·카너먼은 논문에서 “만족도는 주로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좌우되는 반면 행복감 척도는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행복의 개념을 이 두 가지로 구분하는 게 유용하다”고 밝혔다. 이런 사족도 달았다. “10만 달러를 벌던 사람이 15만 달러를 벌게 됐는데 (7만5000달러 한계치를 넘었기 때문에) 하나도 더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연구결과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소득을 얻게 되면 그 후로는 행복이 돈 이외의 요소에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돈과 행복의 관계 연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1974년 리처드 이스털린 남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내놓은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이다. 30개국의 행복도 조사를 그 나라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과 비교했더니 관련성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60년 서독의 1인당 GNP는 나이지리아의 20배였는데 행복도는 오히려 조금 낮았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부의 차이가 행복과 상관이 없을까’ 라는 게 이스털린 역설이다. 이 학설은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2008년 펜실베이니아대 벳시 스티븐슨과 저스틴 월퍼스 교수는 이스털린이 로그(logarithm) 분석을 하지 않고 행복도와 1인당 GNP의 절댓값을 단순 비교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로그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똑같은 1달러를 더 벌더라도 대기업 임원과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에게 그 의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또 삶에 대한 만족도의 등락이 국가경제의 호·불황과 맞물려 움직였다며, 소득과 행복이 서로 관계가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인 서울대 이준구 교수는 “빈곤에서 벗어나 의식주가 해결되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게 되면 추가 소득이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며 “국민소득이 늘수록 필수품보다 다른 사람의 소비행태와 비교해 가치가 결정되는 위치재(positional goods) 소비가 느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나름대로 값이 나가는 국산 자동차를 장만했는데 동료가 고가의 수입차를 타고 나타나면 나는 행복하지 않고 위축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행복경제학에서 통상 활용하는 척도는 삶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아니라 주관적인 행복을 나타낼 수 있는 행복감”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연구를 종합해 보면 돈은 삶에 만족하며 사는 데 크게 기여하지만 일정 소득수준이 넘어가면 행복을 가늠하는 다른 요소들이 끼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책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이 1달러를 더 버는 것이 부자가 1달러 더 버는 것보다 행복감 증대가 크므로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중산층과 서민에 집중하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부의 정도에 따라 돈의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건 이스털린 이후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공감하는 부분이다. 미국 루스벨트연구소의 마크 슈미트 수석 연구위원은 “같은 15% 세율이라도 연봉 20만 달러인 사람이 느끼는 부담이 연봉 2만 달러인 사람이 느끼는 부담보다 훨씬 덜하다”며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세(progressive tax)를 주장했다.



한편 디턴 교수는 논문에서 정책적인 입장을 취하길 거부했다. 그는 “만족도와 행복감 중 어느 것이 더 정책기반으로 타당할지 의문”이라며 “만족도는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얼마나 잘 이루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데 중요하지만 행복감 역시 개인과 정책 모두에 중요하긴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다만 “이미 꽤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데 집중하는 게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 연구결과는 심도있는 정책 논쟁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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