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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불화 사이 ‘베토벤의 밀당’ 생생 표현

중앙선데이 2015.10.18 00:30 449호 27면 지면보기

영화 ‘취화선’에서 장승업을 연기한 최민식.



숫자 3(三)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숫자 3은 완성을 상징했다. 하늘과 땅, 사람을 삼재(三才)라고 하여 우주의 근원으로 생각했으며, 단군과 함께 온 분들도 풍백·운사·우사, 모두 셋이었다. 일상에서도 3은 친숙하다. ‘한국 사람은 삼세판’이라며 단판 승부의 냉정함을 비켜가는 것이 우리네 넉넉함이다.


[with 樂] 트리오 吾園의 ‘유령’

서양에도 숫자 3 또는 기하학적 형태인 삼각형과 얽힌 이야기는 많다. 그리스 사모스 섬에는 삼각형을 우러르고 있는 인물상이 있다. 고대 철학자 피타고라스를 위한 상이다. 플라톤의 이상사회나,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바탕을 둔 봉건사회 역시 삼각형이다.



완성을 뜻하는 숫자 3이 불화와 미묘한 긴장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처럼 서로 얽힌 세 명의 연인들 사이에는 파국의 긴장이 늘 함께 한다. 견제를 통한 균형이라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역시 완전함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조정한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3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고전시대 삼중주곡은 화성적인 안정감을 주는 사중주에 비해 훨씬 적으며 작품의 수준 역시 낮게 평가된다. 가장 대표적인 장르인 피아노 트리오도 그렇다. 악기의 구성이 피아노라는 한 여인을 두고 예민한 바이올린과 든든한 첼로가 견제하고 있는 인상마저 든다. 이들의 조합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어느 한 쪽이 지나치면 관계는 파탄이 난다. 그래서 피아노 삼중주 연주에서는 탁월한 독주자들이 모인 프로젝트팀보다 보자르 트리오 같이 오래도록 눈높이를 맞춘 팀을 좋아한다.



불편한 동거인 피아노 삼중주를 업그레이드 시킨 이가 베토벤이다. 그는 모두 7곡을 만들었다. 그 중 대표작이 작품 70-1 ‘유령’이다. 교향곡 5, 6번과 같은 해인 1808년에 작곡한 중기 대표작이다. ‘유령’이라는 제목은 느린 2악장 때문에 얻게 된 이름이다.



 

첼리스트 양성원(가운데) 중심의 ‘트리오 오원’.



최근 인상적인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전곡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첼리스트 양성원이 중심이 된 ‘트리오 오원’의 연주다. 이들은 각기 독주자로도 활동하지만 파리 음악원을 중심으로 오랜 음악적으로 소통해온 사이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 공연장에서 만난 그들의 청신한 연주는 ‘유령’을 다시금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양성원은 삼중주 전곡 연주를 통해 베토벤의 음악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의 연주에는 일관된 흐름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하자면 품위 있는 생동감이라고 하고 싶다. 에너지가 넘치지만 예의 바른 젊은이를 만날 때 느끼는 즐거움과 같은 것이다.



오원(吾園)은 19세기말 조선 화가 장승업의 호에서 가져왔다. 영화 ‘취화선’이 그의 이야기다. 장승업은 당대에 인정받았던 화가였다. 동시대의 매천 황현은 ‘신이 만든 작품’이라고 칭송했으며 고종 황제도 그에게 작업을 명령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에게 부와 명예는 올가미에 가까웠다. 숭고한 예술의 제단에 자신을 바치는 화가에 대한 이미지는 낭만적으로 전설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양성원 팀이 오원을 쓴 것은 음악 외에 어떤 것도 곁에 두지 않겠다는 결기로 읽힌다.



1악장을 듣는다. 빠르고 강하게 시작한다. 도입부부터 세 악기의 활력 넘치는 목소리가 돋보인다. 특히 제1주제를 전하는 첼로가 인상적이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는 안정감과 확신에 찬 음색이다. 피아노는 약음에서도 자신의 수채화 톤을 잃지 않는다. 맑은 가을하늘처럼 청량한 소리가 종종 몽환적인 느낌마저 준다. 베토벤의 특기인 짧은 모티브를 반복과 변화를 통해 두툼하게 만들어가는 특징이 여실히 드러난다. 세 가닥의 실이 악보에서 묶였다 풀렸다 하면서 교차한다. 마지막 코다에서의 평온함을 이끌어내는 것은 여린 피아노다.



느린 2악장은 두 현악기와 피아노가 얼굴을 마주 대하듯 진행된다. 주제가 반복 될수록 심연을 향하는 계단을 내려간다.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지옥의 문을 지나 한 걸음 한 걸음 아래로 내려가듯이 말이다. 세 악기가 안개처럼 서로에게 스며든다. 으스스한 느낌보다는 진중함이 느껴진다. 이 곡이 ‘유령’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베토벤의 메모와 제자 체르니의 소감 때문이다. 베토벤은 세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오페라로 구상하며 세 마녀를 염두에 두고 이 부분을 작곡했다고 했다. 하지만 곡을 들은 체르니는 “느린 악장은 『햄릿』의 유령을 연상 시킨다”고 했다. 나는 체르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세익스피어의 두 희곡에서 마녀와 유령은 처음부터 등장한다. 맥베스의 마녀는 불길하지만 수다스럽기도 하다. 이 곡의 스산함과 진중함은 고딕풍의 성 위를 느리게 걷는 덴마크 왕의 유령과 더 닮아 있다. 햄릿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그 유령을 햄릿의 죄책감이나 무의식과 연결시킨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끊임없이 출몰하는 유령은 결국 존재의 밑바닥을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피아노 삼중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가 너무 과하면 거북하다. 그러나 서로 눈치를 보면 또 심심하다. 숫자 3은 완전함이라는 이상을 지향하지만 내부에는 늘 불화의 떨림을 담고 있는 잠재적 균형 상태다. 결국 삼중주의 아름다움은 안정과 불화 사이의 끊임없는 밀고 당김에 있는 것 아닐까? 트리오 오원은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았다.



 



엄상준 KNN방송 PD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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