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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없는 무용, 그 공허한 ‘세포분열’

중앙선데이 2015.10.18 00:24 449호 30면 지면보기
지난주 국립극장에는 국립무용단의 공연 2개가 동시에 올랐다. 재연작 ‘회오리’와 초연작 ‘완월’이다. 같은 단체의 공연이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최근 국립무용단이 외부 예술가를 적극 기용해 현대적인 한국무용을 다각도로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프랑스 칸 댄스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된 ‘회오리’는 지난해 세계적 안무가 테로 사리넨이 한국무용에 자신만의 역동적인 스타일을 입혀 모던하면서도 장엄한 무대로 완성해 단숨에 국립무용단의 대표작이 됐다.


국립무용단 ‘완월’ 10월 9~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반면 ‘완월’은 안무가 없는 무용 공연이다. 영화 ‘도둑들’ ‘암살’ 등의 음악감독이자 국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을 이끌고 있는 전방위 뮤지션 장영규의 첫 무용 연출작. 그는 전통무용 강강술래를 자신의 스타일로 편집, 확장시키고 문창숙 단원과 현대무용가 김기범에게 구성을 맡겼다.



‘회오리’의 음악감독이자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공연 음악을 도맡으며 무용과 깊은 인연을 맺어온 장씨는 소치올림픽 국제아트페스티벌에서 국립무용단의 강강술래에 푹 빠졌다. 여러 무용수가 합체와 분열을 반복하는 모습에 강렬한 에너지를 느꼈단다. 음악에서도 악보를 마디마디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것을 즐기는 구조주의자인 그가 강강술래의 건축적 구조에 매료돼 10분 남짓한 소품을 60분짜리 공연으로 ‘세포분열’시킨 것이다.



두 명의 무용수가 고요 속에 양손을 맞잡고 빙빙 돌며 서막을 연다. 암전 후 목탁소리 같은 단순한 비트와 함께 등장한 18명의 무용수가 제각기 강강술래의 다양한 팔동작을 구사한다. 타악과 반복적인 멜로디가 한꺼풀씩 중첩되면서 움직임도 점차 빠르고 복잡해진다. 겉만 보지 말고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라는 걸까. 선풍기와 조명을 이용해 마치 달을 반으로 쪼갠 단면처럼 만든 이미지가 휘영청 보름달을 대신하고, 바닥에는 기하학적 패턴이 수시로 바뀌며 현대성을 주장한다. 몽환적인 음악에 개구리 소리, 파도소리 등 소음들이 섞이며 춤은 다양한 조합의 분절과 중첩, 확장과 변형으로 강강술래를 오마주한다.



강강술래는 고대 농경사회부터 여인네들이 보름달 아래 손잡고 노래하며 이어온 춤이다. 모였다 흩어졌다 반복하는 원형 대열을 기본으로 단순하지만 규칙적이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유기적인 동작의 아름다움이 백미다. 그 움직임은 팽창하고 수축하는 달의 형태, 달의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밀물과 썰물을 닮았다. 달을 닮은 춤을 추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 채워졌다 비워지고, 비워지면 다시 채워지는 생명 탄생의 순환 원리, 즉 여성성 자체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영규는 이 여성성을 쏙 빼버렸다. 색색 고운 치마저고리가 아니라 모노톤 차이나 칼라 민소매 셔츠와 방한용 솜바지 꼴 하의를 입은 무용수들은 전원 여성이되 여성이 아니었다. 그는 페미니스트인 걸까. 왕서방 풍 모자로 머리카락 한올까지 가려 최소한의 여성성마저 감췄다. 아니, 여성성을 넘어 인간성조차 지워버렸다. 세포분열을 거듭하는 거대한 단세포 생명체의 일부로 보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는 유려함 대신 뚝뚝 끊어진 조각들만 남았다.



장씨는 이 무대에 ‘과정이 곧 형식이 된다’는 표제를 내세웠다. ‘전통 춤사위의 계승이나 민속학적 재현에는 관심이 없고, 뭘 새롭게 고안해 보려는 게 아니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장면들에 주목한다’고 했다. 강강술래 안무를 배우는 기계적 훈련 과정들을 도처에 나열한 듯한 느낌은 그래서일 게다.



그런데 강강술래를 쪼개고 뒤섞어 어떤 가치가 더해졌을까. ‘달과 여성’이라는 미적 핵심을 부정하는 건조한 움직임들은 안무에 확대경을 대고 분절적으로 들여다본 과학 연구 논문 같아 보였다. 미덕이라면 잊혀져가던 강강술래 원형의 아름다움을 새삼 환기시켰달까.



결국 안무가의 빈자리가 컸다. 같은 시기 공연된 현대무용 신작 ‘푸가’도 발레동작을 해체·재조립하고 서로 다른 움직임이 변주·반복되며 하모니를 이룬다는 점에서 ‘완월’과 컨셉트가 겹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안무가 정영두가 매끄럽게 뽑아낸 움직임은 모던하고도 우아했으며, 특히 무용수 각자의 개성이 살면서도 물흐르듯 유려한 시퀀스가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춤이란 잘 조각내기보다 잘 이어갈 때 빛나는 것 아닐까. 무용을 지배하는 건 안무가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회오리’가 찬사를 받는 이유도 그것이 인간의 에너지, 그 들끓는 생명력에 대한 찬사이며,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되기 때문일 게다. 춤이란 인간의 고유 영역일진대, 인간의 에너지를 배제한다면 생명력이 상실되는 건 당연하다.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라 세포분열의 파편임을 자처한 ‘완월’은 전위적 실험일 뿐 관객과의 소통을 포기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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