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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IT 벤처 창업 영국 국방·과학 분야 혁신 주도

중앙선데이 2015.10.18 00:24 449호 4면 지면보기
프리볼트를 개발한 폴 드레이슨(55)은 영국 노동당에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영국의 벤처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아마추어 자동차 경주 선수이기도 하다. 남작 작위를 지닌 귀족으로 상원의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영국 국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지역 주민의 대표로 이뤄지는 하원과 귀족으로 이뤄진 상원으로 나뉜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1997~2007년 재임)의 눈에 띄어 2004년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각료로 발탁됐다.



남작 작위 받고 상원의원블레어 총리는 상원을 구성하는 세습 귀족들이 보수당 편을 들면서 노동당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잦자 임기 중 상원 개혁에 나섰다. 자신의 업적에 따라 작위를 받고 본인이 당대에만 귀족 신분을 유지하며 상원의원으로 활동할 뿐 작위를 세습하지는 않는 ‘1대 귀족’을 대거 임명한 것이다. 블레어는 1대 귀족을 대거 양성함으로써 이를 통해 세습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동당을 지지하는 귀족의 숫자를 늘렸다. 블레어 총리의 상원 개혁이다.


‘프리볼트’ 개발 주역 폴 드레이슨

?노동당의 오랜 지지자이자 후원자였던 드레이슨도 이 과정에서 2004년 블레어 총리에 의해 1대 귀족으로 발탁돼 상원의원이 됐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업 경영인으로도 일하며 기술과 경영 분야 모두에서 경력을 쌓은 드레이슨의 경력을 블레어 총리가 높이 산 것이다. 드레이슨은 영국 노동당에 100만 파운드(약 20억원) 이상을 기부한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블레어 총리는 기술경영 분야 전문가인 드레이슨을 기용해 국방과 과학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려고 했다. 드레이슨이 처음 맡은 일은 군의 무기체계를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국방획득 분야였다. 국방부의 국방획득 담당 부장관을 맡았다. 한국의 방위산업청에 해당하는 국방획득청과 국방군수조직도 함께 담당했다.



효율적인 군수체계 확립블레어의 예상대로 드레이슨은 개혁의 전도사로서 노동당 정권에서 맹활약했다. 2005~2007년 국방 장비 및 지원 담당 장관을 지냈으며, 2008~2010년에는 과학장관을 지냈다. 2009~2010년에는 전략국방획득개혁 담당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국방 분야에서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전력은 유지 또는 강화하는 효율적인 군수체계 마련에 집중했다. 이 경험을 모아 2005년 12월 그는 ‘국방산업전략(DIS)’이라는 책을 펴냈다. 무기 구입에 경영 개념을 도입했으며, 정부의 무기체계 구입이 방위산업 분야의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국방산업의 발전을 돕는 전략적인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과학장관을 지내면서 벤처기업 육성과 효율적인 연구개발(R&D) 예산 관리에 집중했다. 벤처기업인이 대학이나 연구소에 ‘상주 기업인(Entrepreneur in Residence)’ 자격으로 입주해 산학 협력을 이루는 아이디어도 내놨다. 연구개발이 기술창업과 유기적으로 결합되도록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로봇공학으로 박사학위드레이슨은 잉글랜드 중서부에 있는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에 있는 애스턴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1986년 로봇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다양한 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93년 옥스퍼드에서 백신 생산 전문업체인 파우더젝트 제약사를 공동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바이오업체인 카이런에 거액을 받고 넘겼다. 카이런은 나중에 세계적인 제약사인 노바티스에 흡수됐다.



 파우더젝트 제약사의 대표를 지내던 2001년에서 2002년까지 바이오산업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옥스퍼드의 존 래드클리프 병원에 어린이 병동을 건설하기 위한 모금회의 회장도 지냈다. 거액을 받고 회사를 넘긴 2003년부터 옥스퍼드대의 사이드 경영대학 및 경영대학원에 상주 기업인으로 입주해 새 벤처기업 창업을 준비했다. 바이오 벤처기업인으로 거액을 벌고 상원의원과 과학장관을 지낸 인물이 새로운 벤처기업을 창업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옥스퍼드 근처에 창업한 드레이슨 테크놀로지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2010년 르망 24 자동차 경주에 참가한 드레이슨의 레이싱팀.



직접 만든 전기차로 경주 참가자동차 경주가 취미인 그는 고속 전기경주차를 개발해 직접 몰고 경주에 참가하기도 했다. 현재 모터스포츠산업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에는 왕립공학원의 펠로가 됐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과거 바이오벤처로 거액을 벌었던 드레이슨이 이번에는 전기자동차나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벤처를 창업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드레이슨은 예상을 깨고 IT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프리볼트를 선보인 것이다. 경계를 허물고 분야를 뛰어넘는 ‘크로스오버’형 벤처기업인임을 보여준 것이다. 영국의 일런 머스크에 해당하는 혁신 기업인인 셈이다.



?그는 의지의 인물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실명한 그는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장애는 그가 가장 즐기는 일을 할 수 없게 했다. 바로 자동차 경주다. 그는 24시간 동안 계속 달리는 극한의 자동차 경주인 ‘르망 24’ 참가에 필요한 국제면허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 규정이 바뀌면서 비로소 경주에 나설 수 있게 됐다. 2009년 대회 첫 참가한 그는 12위로 완주에 성공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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