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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예술가 아지트, 스코틀랜드 고성 … 발길 닿는 곳은 어디나 ‘스위트 홈’

중앙선데이 2015.10.18 00:09 449호 8면 지면보기
전세계 190개국 3만4000개 도시에 150만개의 ‘우리 집’이 있다면 어떨까. 오늘은 파리지엥처럼 센 강가를 거닐고 내일은 런더너가 되어 노팅힐 플리마켓을 어슬렁거리다 풍경 속 집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면.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Airbnb)는 이 같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현지인이 내어주는 집에 머물며 현지인 같은 라이프스타일 체험하기다. 지난 한 해 동안 이루어진 숙박이 4000만 건이었는데 올해는 벌써 6100만 건을 넘어 연말까지 8000만 건에 이를 전망이라니, 너도 나도 ‘신세계’에 눈뜨고 있음은 틀림없다.


여행의 새로운 스타일, 에어비앤비 체험기

이왕 에어비앤비로 떠날 거면 테마를 분명히 잡는 것이 좋다. 지난달 아시아 5개국에서 선발된 게스트 5명이?빅뱅의 지드래곤이 사용하던 경기 덕양스튜디오에서 2박 3일간 머물며 호스트와 달콤한 추억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중앙SUNDAY S매거진은 유럽의 가을을 만끽하는 방법을 주제로 정하고 이중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숙박지 3곳을 골랐다. 남들 다 가는 뻔한 관광지는 과감히 제끼고 현지인처럼 먹고 자며 온전히 머무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마음이다.



 

1 카페 분위기가 물씬 나는 테이블. 2 다락방처럼 아늑한 침실.

3 부엌에서 거실로 향하는 입구. 옛 가죽공장 시절 간판이 남아있다.

4 거실에 서면 모든 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프랑스 파리의 로프트. 집안 곳곳에 화분이 놓여있어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 새로운 게스트가 올 때면 맞춤형 꽃장식을 준비한다.

파리 호스트인 세기르. 생마르탱 운하를 사랑하는 지역 밀착형 아티스트다.



가죽 공장의 무한 변신 … 예술가의 아지트 패션과 예술의 도시.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다. 그렇다면 진짜 예술가처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 엄청난 거장과 압도적인 대작만 예술은 아닐 터다. 오히려 일상을 수놓는 건 수많은 신진 아티스트들의 크고 작은 작품들일 테니 말이다.



생마르탱 운하 인근에 자리한 디자이너 세기르의 로프트를 택한 건 그 때문이었다. 주인이 옆집에 살고 있다는 편의성도 한 몫 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그녀의 집은 빈티지하면서도 정갈했다. 천장에 난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과 실내 곳곳에 놓인 커다란 화분은 마치 정원 한가운데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4개의 침실은 각기 독립된 듯 보이지만 모두 중앙을 바라보고 있어 실상은 연결되어 있는 오묘한 느낌을 주었다.



공존하기 힘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비결을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전시 디자인을 하다보니 공간 구성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사람들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고 관심이 무엇에서 무엇으로 옮겨가는지 관찰하게 되거든요.”



그래서인지 허투루 낭비하는 공간이 없다. 조그마한 드레스룸에도 안락한 카우치가 놓여 있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는 다락방 같은 비밀기지가 있다.



1990년대까지 가죽공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사들여 리모델링한 터라 옛 흔적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깥에서 보기엔 평범한 빌딩 같지만 안에는 큰 공장을 여러 공간으로 쪼갠 다세대 주택 형태여서 모든 집의 구조가 다르다. 입구에는 가죽을 뜻하는 ‘Cuirs & Beaux’라는 간판이 남아있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앤티크한 스위치도 그대로다.



“예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공장이었어요. 가죽 공장이 많다 보니 재단사와 옷 가게도 많이 생겼고. 직접 만드는 공방이 많으니까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게 됐죠.”



식탁을 장식한 플라스틱 꽃병이며 화장실에 있는 세라믹 도기 등 숨은 디자인 찾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그녀는 “모두 근처에서 산 것”이라며 “원한다면 함께 가보자”고 했다. 스쿠터를 타고 10여 분간 달렸더니 아틀리에 CC다. “원래 여기도 창고였어요. 배로 실어온 선적물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몇 달이고 보관을 해야 하니까 큰 공간이 필요했죠.” 이제는 아티스트들의 작업 공간과 국제학생 숙소로 사용되는 ‘레지던스 콰이 드 라 루아르’에서 디자이너 캐롤 셰브론이 직접 만든 잔에 커피를 마신다. 아티스틱한 파리지엥이 따로 없다.



 

5 영화 ‘사랑해 파리’와 ‘아멜리에’의 촬영 장소로 유명한 생마르탱 운하. 날씨가 좋은 날이면 피크닉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찬다.

6 150여 대의 보트가 늘어서 있는 영국 런던의 그랜드 유니언 운하. 단순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배 위에서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7~9월엔 녹조현상이 심해지지만 그 나름대로 정취가 있다.

8 다이닝 테이블에서 침대로 변하는 트랜스포머 같은 공간. 9 게스트 취향을 고려해 채워진 고마운 냉장고가 있는 부엌.

10 운하를 가장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인 패들링.

7 리라 보트홈 정원에 마련된 흔들 의자. 호젓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런던 도심 한복판 운하에서 만난 힐링 스팟 세기르가 건넨 빼곡한 동네 맛집 리스트를 격파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한 시간 넘게 연착하면서 나는 기다리고 있을 호스트 생각에 발만 동동 굴렀다. 결국 저녁 6시에 만나기로 했던 약속은 8시가 되서야 지킬 수 있었다.



“그는 피부가 하얗고 키가 크고 대머리야. 절대 놓칠 수 없을 거야.” 페딩턴 역으로 마중 나온 로완은 부인 다르시가 보낸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는 “원래는 패들을 타고 오려고 했는데 해가 져버려서 아쉽다”며 “대신 메가시티 한가운데서 숲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숲이 나타난다고?

런더 호스트인 로완. 잘나가는 국제 변호사에서 명상을 즐기는 라이프 코치로 변신했다



마법은 진짜로 일어났다. 런던 북부를 가로지르는 그랜드 유니언 운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보트하우스에서 묵는다는 사실이 설레긴 했지만 족히 150대는 될 법한 보트들이 줄이어 정박하고 있는 광경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로완은 “우리처럼 땅을 사고 세금을 내며 정착하는 보트 커뮤니티도 있고 허가를 받아 최대 2주까지 머무르는 보트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주 가난한 사람부터 아주 부유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 다시 떠나고 또 들어오는 배들을 매일 같이 마주한다는 건 또 어떤 기분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건 심플 럭셔리”라는 그의 말처럼 ‘리라 보트홈’은 특별했다. 영국 운하 규격에 따라 넓이는 7피트(약 2.1m)로 좁았지만 선두부터 선미까지 즐길 거리로 빼곡했다. 우선 가장 앞쪽엔 사람들이 둘러앉을 수 있는 다이닝룸과 부엌이 마련돼 있었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방격인 침대칸과 욕조 및 화장실이 나오고, 다시 한번 문을 열면 2층 침대 2개가 나란히 마주보는 구조다. 선미에 있는 조그만한 발코니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다.



이곳의 진가는 아침에 발휘된다. 침대 위에 뚫린 창문으로 비치는 햇빛에 일어나 일명 ‘지혜의 나무’에 매달려 있는 흔들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여기가 과연 런던일까 싶은 전혀 다른 시공간의 느낌이 온몸을 휘감는다. 물이 데워진 핫 텁에 들어가 하는 스파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변호사로 일했던 로완과 명상을 시작하니 이국적인 느낌이 한층 짙어졌다. 인디안 비타민 캡슐과 직접 갈아만든 채소주스를 마시고 오감을 여는 연습에 들어갔다. 눈을 감고 정신을 호흡 뒤로 보내며 숨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서서히 새로운 것들이 들어왔다. 새 소리가 들리고 민트 잎의 강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남아공 출신인 그는 어떻게 명상을 접하게 됐을까. “16년 전 끔찍히 아끼던 여동생을 사고로 잃고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원래 몸에 화(火)가 많은 체질이었는데 명상을 하면서 컨트롤할 수 있게 됐죠.”



인도 근무 당시 같은 은행에서 부인을 만나 런던으로 돌아온 이들은 모험을 시작했다. 세컨 하우스로 낡은 보트를 사서 개조하고, 라이프 스타일 코치로 일하며 사람들을 만난다. 이래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나 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변화의 단서를 제공하니 말이다.

11 고즈넉한 기품을 자랑하는 스코틀랜드 인버루리의 16세기 저택. 그 자체로 한 편의 그림 같다.

12, 14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며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다.

13 위스키의 본고장답게 지역 술을 빚는 보리밭이 많다. 작물을 수확하고 남은 짚을 더미로 모아두는 모습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15, 16 벽면엔 조상들의 초상화가 장식돼 있고 빈티지한 가구들은 안락함을 선사한다.



대대손손 내려온 고성에서의 하룻밤 인버루리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기품 넘치는 고성 사진만 보고 덜컥 예약을 하긴 했는데,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스코틀랜드 도시라곤 에든버러 밖에 모르는데 애버딘이라는 낯선 공항에 내린 것도 모자라 기차를 타고 인버루리 역으로 가야 한다니. 거기다 장롱면허인 나는 호스트에게 운전까지 부탁해야 했다.



다행히 레슬리 부부는 시원시원했다. 에어비앤비 메시지로 사정을 설명하니 캔디 부인은 흔쾌히 드라이버 겸 가이드를 자청했다. 그녀는 인근에 고성이 많은데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는지, 식사는 자신들과 함께 할 건지, 못 먹는 음식이나 선호하는 재료가 있는지 등을 물었고 앱에는 그렇게 주고받은 수십 통의 메시지가 쌓여갔다.

인버루리 호스트인 캔디.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는 솜씨좋은 셰프다 .



마침내 집에 도착해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16세기 처음 짓기 시작해 17세기에 별채를 확장하고 18세기에 다락방을 올리는 등 수 세기에 걸쳐 완성된 맨션이었다. 1070년 여왕이 물가를 건너다 넘어질 뻔 했는데 레슬리의 버클을 잡고 일어나면서 이를 계기로 만들어진 버클 문양이 곳곳에 새겨져 있고,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멕시코 출신 할머니를 비롯 조상들의 초상화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집인 셈이다.



캔디는 “영국에서는 장자 상속제를 따르기 때문에 1988년 남편 세바스천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 집에 들어왔다”고 했다. 이어 “2남 3녀가 모두 커서 도시로 나가면서 남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올해부터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가족 사진을 보여주는데 미국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이그리트 역할로 나오는 로즈 레슬리가 셋째란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과 똑 닮았다.



석유 사업과 농장이라는 본업이 따로 있는 부부지만 이들은 준비된 호스트였다. 자녀 다섯을 키운 캔디는 완벽한 셰프였고, 토론을 즐기는 세바스천에게는 모든 게스트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한국 전쟁부터 중미 관계까지 근현대를 오가는 질문에 답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캔디가 만든 최고의 연어 스테이크가 없었다면 애써 잡고 있던 정신줄을 일찌감치 놓았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내년 4월에는 장남 윌리엄에게 이 집을 물려주고 할머니에게 상속받은 20km 거리의 리클리헤드 캐슬로 옮겨가 에어비앤비를 계속 할 계획”이라고 들려주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떠날지어다. 언제 어떤 귀인이 나타나 그대의 여행에 동행이 되어줄지 모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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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Airbnb)는]



에어비앤비(Airbnb)는 20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다.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쫓겨날 위기에 처한 두 청년이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 행사로 시내 모든 숙소에 방이 동났다는 소식을 듣고 빈 방을 돈을 받고 빌려주면서 시작됐다. 옷장에서 꺼낸 에어베드(Airbed)와 간단한 아침식사(Breakfast)를 제공한다는 데서 이름을 따 왔다.



홈페이지(www.airbnb.co.kr)를 통해 전 세계 150만 개의 숙소를 둘러보고 예약할 수 있다. 7년 만에 세계적인 스타트업 기업으로 성장해 가치가 200억 달러(약 22조 원)에 달한다. 이는 업계 1위인 힐튼 호텔의 시가총액인 219억 달러(약 24조 원)와 맞먹는 규모다. 지난해 3월 설립된 한국법인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렌트 범위가 다양하기 때문에 가격 역시 1박당 1만원~100만원 이상으로 천차만별이다. 이번 여행에서 방 하나를 이용한 인버루리 고성은 1박에 19만원이다.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린 파리 로프트와 런던 보트하우스는 각각 57만원, 90만원 수준. 인원에 따라 소정의 추가 금액이 있긴 하지만 6~1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어 가족 및 단체 여행객에게 적합하다.



하지만 공유경제가 확산되면서 무허가 불법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관광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집주인이 거주하는 단독ㆍ다가구ㆍ다세대ㆍ아파트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숙박업을 할 경우 관할 구청에 도시민박업 신고를 해야 한다. 이는 비단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어서 영국에서는 지난 3월 단기임대 허용 법안을 통과시키고 미국에서는 세금 부과 방안을 논의하는 등 전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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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ㆍ런던ㆍ인버루리 글ㆍ사진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취재협조 에어비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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