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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 <16> 이스터 대륙

온라인 중앙일보 2015.10.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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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수연


숫자 암호 ‘9’ 찾아낸 수리를 가로막은 폴리페서


숫자가 빛남과 동시에 아홉 거인이 일어서고
전류 뿜는 올름들을 담은 파도가 몰아치는
위기의 순간 볼트가 사태를 수습해간다
그때 네피림과 폴리페서가 번갈아 등장하는데


이스터 대륙은 폴리페서가 지배하고 있었다. 덩치 큰 거인들은 어린아이처럼 복종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게 아니라 바보처럼 보였다. 이상했다.

“뭐야? 덩치 큰 멍청이? 왜 저러는 거야? 힘으로 밀어붙이면 폴리페서 정도는 게임도 안 될 텐데? 지구 상 모든 동물은 원래 덩치 큰 놈이 지배자가 되는 거라고. 흥! 수상한 곳이야. 조심해야겠어.”

“마루! 넌 영화도 안 보니? 혹성탈출 못 봤어?”

사비가 어리둥절해 하는 마루를 흘겨봤다.

“지능이야. 지능. 인텔리전스. 이게 바로 위대한 지배력이라고. 아이고 이 밥통아! 거인들은 그냥 지능이 떨어지는 거야. 뭐가 수상해?”

사비는 수리를 쳐다보며 무언의 동의를 구했지만 수리는 갑자기 교수라도 된 듯 점잖은 말투로 말했다.

“내가 동물의 커다란 덩치와 인간의 높은 지능이 있는 생명체이긴 하잖아? 그래서 말인데 사비 말이 맞다. 인류는 지능을 우선적으로 진화해왔어. 그 예로 사냥을 하던 때보다 현재 인류의 두개골의 두께는 얇아. 왜? 머리통 맞대고 싸울 일 없으니까. 두개골 깨질 일이 없어진 거지. 덩치도 갑, 지능도 갑인 나는 어쩌면 우주의 지배자 네피림과 이스터 대륙의 거인들의 혼혈 아닐까?”

사비와 마루는 팔짱 낀 채 수리를 한심한 듯 보며 한숨까지 푹푹 쉬었다. 수리는 상관없이 계속 떠들었다.

“52는 물고기 형상의 문자였어. 물고기는 왕을 의미해. 어쩌면 내가 왕일 수 있지 않을까? 거인들의 왕? 네피림의 왕? 누이들의 왕? 우주머리통 아저씨도 그랬잖아?”

수리의 밑도 끝도 없는 허세에 마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꽤 오래 살았지만 너 같은 허세쟁인 보다보다 처음이다. 쳇! 수리 아웃!”

“음, 42개의 기계인간과 42개의 거인 유골이라…. 42명의 거인은 왜 죽었을까? 왜 유골을 남겼을까? 그리고 어떻게 죽었을까? 모든 숫자를 찾아내면 진실이 드러나겠지. 거대한 미로 같아. 게임인 거지.”

“제발 탈출 방법 좀 강구하자. 여기서 강의만 할 거니? 이토록 열악한 흙 동굴에서? 지하감옥에서? 거인들 다리통 사이에서?”

마루는 툴툴거렸다. 순간 수리의 민머리에서 숫자들이 발광하기 시작했다(폴리페서가 수리의 붉은 머리카락을 밀어낸 후, 단 한 올도 자라지 않아 눈이 부신 민머리였다). 숫자 9였다. 9가 찌르는 듯한 빛을 뿜어내자 거인들의 다리가 움찔움찔 움직이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풀풀 일어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목이 따갑고 기침이 절로 났다. 쿵쿵 쿵쿵 동굴이 흔들렸다. 거인들은 다리를 쿵쿵거렸다. 동굴은 당장 무너질 듯 위태위태했다.

“거인들이 일어서기 시작했어.”

“그렇다면 확실히 동굴이 무너진다는 거야. 위험하다고. 이건 개죽음이야. 수리야. 나 살려줘.”

사비도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우르르 콰쾅. 거인들이 지탱하던 땅이 급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수리는 “다 모여, 흩어지지 마”하고 소리를 질렀고 잠시 후, 아이들은 모두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수리 머리에 쓰인 숫자 9의 비밀은

썸은 무너지는 땅을 양쪽 어깨로 떠받치고 있었다. 골리쌤은 썸의 모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골리쌤은 썸에게 홀딱 반한 눈빛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어색하고 거북스러웠다.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마루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입에서 흙먼지가 푸우 뿜어져 나왔다.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된 사비는 “도대체 뭐야? 빨리 말해” 다그쳤다.

“오메가 고고학교 학생들은 골리쌤을 공룡 닮았다고 했잖아?”

수리와 사비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게 아니야. 틀렸어.”

수리와 사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마루를 응시했다.

“사람을 닮은 공룡인 거야.”

마루는 진짜 진지하고 심각했다. 수리가 마루를 퍽 밀어버렸다. 마루가 나가 떨어진 순간 거인들이 다시 발을 굴렀다. 오랫동안 돌의 모습으로 갇혀있던 거인들은 몸뚱이에서 삐걱 뿌욱 삐익 쿡 별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수리가 거인들의 수를 세었다. 총 아홉이었다.

“아홉이야! 9! 09!”

52. 09. 42. 532. N

13. 13. 12. 69. W.

360. 72. 30. 12. 25920.

수리의 눈앞에 그 암호가 나타났다.

“09! 찾았어. 거인들이 바로 암호야. 거인들을 잃어버리면 안 돼!”

“엇. 수리야!”

저쪽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이곳은 바다가 아니야. 강도 아니야. 여긴 대륙이라고. 정확히 땅속이야. 어떻게 된 거지? 그런데 일단 도망치자.”

거센 파도였다. 강이었다. 강이 허공을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파도 속엔 올름들이 펄펄 날아다녔다. 장님 물고기 올름들이 펄떡거리며 온몸에서 전류를 방출하고 있었다. 찌리릿 찌리릿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아무래도 감전사할 것 같아. 난 타 죽긴 싫다고. 수리야. 어떻게 해봐. 제발 제발.”

마루가 난리법석이었다. 수리는 골리쌤을 찾았다. 다행히 골리쌤은 아직 끄떡없이 썸의 모가지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올름들을 가득 담은 파도가 달려오자 썸이 어깨로 받히고 있던 땅이 폭삭 무너져 내리며 파도와 함께 쓸려가기 시작했다. 썸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했다. 아이들은 일단 썸을 향해 헤엄쳐갔다.

“썸의 아무거나 잡으란 말이야. 이러다 다 죽고 말겠어.” 소리치던 수리가 “아참, 볼트. 볼트. 볼트 어디 있어?”하며 사방을 돌아봤다. 볼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수리·사비·마루는 안간힘을 다해 썸에게 헤엄쳐갔다. 드디어 무언가 잡았다. 그러나 물살은 더욱 거세어졌다. 올름들이 얼마나 많은지 물보다 양이 많았다.

“우리가 봤던 올름들이 다 출동한 것 같아.”

말을 마칠 새도 없이 다시 파도가 몰아닥쳤고 올름들이 발산하는 전류가 모두를 죽일 판이었다. 이미 작은 설치류들은 모두 휩쓸려가거나 올름들이 내뿜는 전류에 의해 새까맣게 타 죽었다. 풀 한 포기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였다. 썸도 이제는 버티기 어려웠다. 물살을 이길 순 있었지만 전류를 이길 수는 없었다. 물살은 점점 격하게 용솟음쳤다. 떼를 지어 튀어 오르는 올름들은 거대한 하나의 괴물이 되었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저마다 떨어져 나갔다. 올름 덩어리가 온몸에 전류를 뿜어내며 물살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다시 용솟음쳤다. 몇십 미터는 충분해 보이는 크기였다. 전류가 어마어마했다. 물살에도 전류가 일었다. 이제는 전류의 파도였다.

“여기서 죽는구나. 거인들은 위기의 순간에 아무 쓸모도 없네.”

“포기하기엔 아직 일러, 수리야. 저것 봐!”

사비가 고함을 질렀다.

“수리 혀엉~”

볼트였다. 온몸에 엄청난 전류를 휘몰아 날아오는 볼트에게 오히려 올름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올름의 전류는 볼트의 전류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져 나갔고 물살은 점차 잦아들었다. 볼트의 전류가 올름들을 분해하고, 물살은 이제 땅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네 이름이 괜히 볼트가 아니구나.”

수리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물살은 사라지고 하늘은 맑아졌다. 그리고 네피림이 나타났다.

“42! 09!!”

네피림의 눈이 무섭게 말하고 있었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도 버릴 때가 됐다. 네피림의 눈 안이네.”

골리쌤이 아이들을 보고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썸의 다리통을 붙들고 있었다. 거인들도 쭈그린 채 썸의 다른 다리통에 한 손가락씩 걸치고 있었다.

“이건 너무 웃겨. 말도 안 돼. 이런 바보도 처음이다. 우하하.”

“그래. 진격의 바보들인가 보다.”

배꼽을 잡고 웃는 마루에게 수리가 맞장구쳤다. 그때 가는 비가 내리면서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노래였다.

네피림의 눈에 갇힌 수리의 아빠

“모든 새들과 모든 물고기와 모든 바람이 서로 사랑을 했네.

그곳에서 태양이 태어나고 달이 태어나고 별이 태어났네.

그리고 그들이 태어났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태어났네.

누구보다 키가 컸네.”

“아빠가 보여. 봐.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노랫소리는 빗줄기마다 배어있었고 그 빗줄기 안에 아빠의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아빠가 무언가 받아 적고 있어.”

아빠는 목판, 태블릿에 암호를 기록하고 있었다.

“42! 9!”

네피림은 다시 한 번 명령했다.

“42! 09!”

수리는 어쩔 수 없었다. 손을 내밀었다. 숫자를 주려 했다. 그때 다시 노랫소리가 들렸다.

“모든 새들과 모든 물고기와 모든 바람이 서로 사랑을 했네.

그곳에서 태양이 태어나고 달이 태어나고 별이 태어났네.

그리고 그들이 태어났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태어났네.

누구보다 키가 컸네.

그들은 무지개를 몰고 오네.

무지개가 기쁨을 주네.”

“노래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네피림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네피림의 눈에서 아빠의 모습이 나타났다. 수리는 아빠를 찾았다. 빗줄기 속의 아빠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아빠, 아빠… 얼른 피하세요. 빨리 피해요.”

수리가 외쳤다. 아빠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리의 눈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이제야 거인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누이들이 나타났다. 폴리페서도 당당하게 나타났다.

“이스터는 네피림이 파괴하지 못해. 나비가 있거든,”

그러나 수리는 지지 않았다.

“아니 내가 있거든. 네피림은 내가 이곳에 도착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거야, 그 사다리만 없었다면 이곳에 올 수 없었겠지. 어쨌든 당신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난 네피림에게 이 숫자들을 줘버릴 거야. 난 아빠를 찾으면 돼. 다른 탐욕은 없어. 그리고 내 친구들과 볼트를 구할 거야.”

폴리페서가 수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는 떠나지 못해. 왜냐하면, 너의 아빠가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하거든. 아빠는 네피림의 볼모다. 너는 네피림을 죽여야 할 거다.”

수리는 폴리페서를 노려보았다.

“내가 네피림을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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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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