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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자랑스럽게도 비민주적인

중앙선데이 2015.10.16 10:27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남윤호입니다.



요즘 나라꼴이 왜 이 모양이냐, 하는 탄식을 자주 듣습니다. 경제는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고, 정치는 진창 속에서 날을 새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고도 ‘안전 대한민국’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이쯤 되면 국가의 통치역량이 슬슬 바닥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법합니다.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통령의 리더십만 탓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국가체계 자체의 한계를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게 국가개조론 아닙니까. 구호는 거창했습니다. 의지도 결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게 뭡니까. 관피아 막고, 사고 친 부처 통폐합하는 것 외에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개헌론은 정치적 이해가 깔린 채 나왔다 쑥 들어갔고, 정치개혁도 정파이해에 따라 춤추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가모델을 찾는, 큰 지평의 고민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체계는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국가의 통치역량에 대한 고민,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서구에서? 이미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영국 언론인 존 미클레스웨이트와 애드리안 울드리지가 쓴 『제4의 혁명』은 그런 노력의 요약본입니다. 두 저자는 서양에서 근대 국가체계와 관련한 혁명적 변천이 세 차례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제1의 혁명은 17세기 중앙집권적 국민국가 형성, 제2의 혁명은 18~19세기 자유방임주의 국가 등장, 그리고 제3의 혁명은 20세기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가리킵니다.



문제는 세 번째 혁명의 유효기간이 다 됐다는 겁니다. 복지국가의 수명을 단축하는 요인은 한둘이 아닙니다. 폭주하는 복지수요, 국가개입을 요구하는 갈등의 증가, 정파 대립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입법부, 그리고 대중을 홀리는 극장식 정치…. 이런 과부하가 걸리면 국가 시스템은 더 엉망으로 돌아가고, 국민은 그에 분노하며 계속해서 국가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이게 국가에 추가적으로 과부하를 거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다 유럽의 재정위기, 월스트리트의 폭주는 자유시장적 자본주의가 역사의 종결자라는 확신을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이 국면에서 새 국가모델을 찾는 제4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게 미클레스웨이트와 울드리지의 결론입니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중국 관변학자들이 입을 모아 비판하는 게 ‘민주주의의 통치능력 결핍’입니다. 서구 민주주의는 효율적이지 않다는 인식입니다. 양광빈(楊光斌) 중국인민대 교수는 얼마 전 발표한 논문에서 “민주화는 세계를 석권했으나 통치 미흡이라는 유령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러곤 인구 1억이 넘는 12개 국가 중 미국·일본·러시아는 약탈로 컸지만, 소위 ‘민주집중제’를 채택한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주장했습니다. 권위주의 체제라곤 하지만 ‘for the people’을 중시하는 위민정치의 승리라는 뜻입니다.



고도성장의 자신감을 발판으로 ‘자랑스럽게도 비민주적인’ 국가모델을 내세운 듯합니다. 하기야 세계화의 전도사인 토머스 프리드먼도 2009년 9월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일당독재엔 분명 단점이 존재하지만 중국처럼 똑똑한 집단이 통치하면 엄청난 장점을 지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찬사가 나오는 판이니 중국인들의 노골적인 체제 우월감을 이해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중국 관변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모든 걸 관리하는 시스템은 혁신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동성과 창의성을 자극하는 자유가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중국의 한 언론인은 흥미로운 비유를 했습니다. “우리는 쿵푸와 팬더를 모두 갖고 있지만 ‘쿵푸 팬더’라는 히트작을 만들진 못했다”고 말입니다.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려면 무엇보다 유능해야 합니다. 문제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면 할수록 되레 무능해진다는 게 지금까지의 경험이라는 점입니다. 중국이 과연 유능한 국가입니까. 과거 중국은 문화혁명과 대약진운동으로 인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지 않았습니까. 최근엔 금융 불안과 성장률 저하로 ‘유능한 국가’ 운운하기 민망한 분위기입니다. ?앞서 인용한 『제4의 혁명』이라는 책의 부제는 ‘국가개조를 위한 글로벌 경쟁(The Global Race to Reinvent the State)’이더군요.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기억엔 1년 전 외치던 국가개조론조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대신 개발독재의 향수 또는 잔재 탓인지 무슨 문제 있을 때마다 강력한 국가 이니셔티브를 희구하곤 합니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도 그런 맥락 아닙니까.?금주 중앙SUNDAY는 중국의 체제 우위론을 소개하고 그 논리적 맹점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추상적이고 무거운데다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이슈이지만, 국가개조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해보자는 뜻에서 지면을 할애하겠습니다.



지난주 중앙SUNDAY의 화제작은 뭐니뭐니 해도 ‘나쁜 상사 지수(Bad Boss Quotient)’였습니다. 직장 내 권력관계를 토대로 가해지는 상사의 무례함이 비판 대상이었습니다. 회사를 뜻하는 영어 company는 ‘함께’라는 의미의 com과 ‘빵’을 가리키는 pany의 결합어입니다. 함께 먹고사는 곳이 곧 회사라는 뜻이지요. 상사나 부하 모두 함께 먹고사는 동료입니다. 서로 예의바르게 행동하면 먹고사는 일도 훨씬 잘 풀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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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블랙홀입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말입니다. 여야는 산적해 있던 당내외의 현안을 뒤로 한 채 국정화를 이슈로 대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선거 국면과 맞물려 어떻게 전개될까요. 관전자 입장에선 이런저런 시나리오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질적인 문제, 즉 어떻게 하면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교과서를 만들 것이냐 하는 디테일에 대한 논의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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