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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 칭다오 → 쑤저우 → 옌타이, 조희팔 6개월마다 옮겨 다녀”

중앙일보 2015.10.16 02:24 종합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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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씨가 2008년 다단계업체 세미나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삼촌(조희팔씨)은 중국에서 6개월마다 집을 옮겨 다녔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불안해했다.”

함께 중국 밀항한 조카 인터뷰
“한국서 관리인이 꼬박꼬박 돈 보내
기사 두고 폴크스바겐 페이톤 타
골프 치며 일주일에 네 번은 술
코만 수술, 양악·모발이식 안 해
삼촌 못 잡는다, 사망했으니까”

4조원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의 조카 Y씨(46)의 말이다. 그는 15일 대구시 동촌유원지에서 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이름과 사진은 공개하면 안 된다”면서도 조씨의 중국 생활을 소상히 밝혔다.  Y씨는 조씨가 밀항해 중국으로 갈 때부터 함께 했다. 밀항과 관련, 자수해 재판을 받고 1년간 복역한 2010년 초부터 2011년 초까지 1년간을 빼고는 줄곧 조씨와 함께 지냈다. 자수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출소한 뒤에 다시 중국으로 가서 조씨와 같이 살았다. 그는 조씨의 생존 여부에 대해 “삼촌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Y씨와의 일문일답.

-조희팔씨가 중국 어디 어디에서 살았나.

“처음 밀항해 다롄(大連)에 도착했고 그다음엔 칭다오(靑島), 쑤저우(蘇州), 다시 칭다오, 웨이하이(威海), 옌타이(煙臺)로 옮겨 다녔다.”

-호텔에서 생활했나.

“30~40평형(99~132㎡) 아파트를 임대했다. 조선족 운전기사 이름으로 임대했다. 칭다오엔 아직 임대 기간이 끝나지 않은 아파트가 한 채 있다.”

-기사가 있었다면 차량이 있었다는 말인가.

“처음엔 지프(Jeep)를 샀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중국 공안이나 한국 경찰이 쫓아와 차량으로 길을 막으면 들이받고 도망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중국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뒤엔 폴크스바겐 페이튼으로 바꿨다.”

-누구누구와 함께 살았나.

“내연녀가 늘 같이 있었다.”

-내연녀가 누군가.

“….”

-뭘 하며 살았나.

“주로 골프를 쳤다.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네 번은 꼭 술을 마셨다. 외부인과는 거의 만나지 않고 우리끼리만 시간을 보냈다.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페이튼 같은 고급 차에 운전기사를 두고 골프까지…. 돈은 어디서 났나.

“한국에서 꼬박꼬박 입금됐다. 한국에 있는 자금관리인이 보냈다. 그래서 뭉칫돈을 들고 다니는 일은 없었다.”

-자금관리인이 누군가.

“모른다.”

-조씨가 중국에서 성형수술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도착하자마자 콧대를 높였다. 하지만 아프기만 하고 인상착의가 변하지 않아 삼촌이 실망했다. 한때 양악수술과 모발이식도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하지 않았다.”

-밀항은 어떻게 진행됐나

“모두 3차례 시도했다. 처음에는 중국인들이 공해상으로 밀항선을 타고 오면 한국에서 출발한 삼촌이 옮겨타는 방식으로 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삼촌 신변을 맡길 수 없어서 포기했다. 두번째는 내가 중국으로 건너가 밀항선을 준비해 약속된 공해상으로 갔다. 하지만 파도가 높아 삼촌이 한국에서 출발을 못해 실패했다. 세번째 시도에서 밀항에 성공했다. 격렬비열도 인근 공해에서 옮겨탔다.”

-밀항 때 짐을 많이 가져갔나.

“옷 세 벌이 전부였다. 한국에서 돈을 송금받으면 되니까 현금도 필요 없었다.”

-조희팔씨가 아직 살아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살아 있다고? 삼촌은 못 잡는다.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안 된다. 왜냐. 사망했으니까.”

-한국에서는 잘 믿지 않는다.

“옌타이에 살던 2011년 12월 18일이었다. 스크린골프를 치러 나가겠다고 했는데 오후 9시쯤 조선족 운전기사에게 연락이 왔다. 삼촌이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도착해 보니 맥박이 없어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발이 시커멓다. 그때 사망했다.”

-조씨가 웨이하이의 호텔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잘못된 정보다.”

-조씨가 갑자기 숨졌다면 남은 재산은 어디에 있나.

“삼촌으로부터 돈을 받아 관리하던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불렀을거다. 나도 누군지 참 궁금하다.”

-경북 영천시에 선산이 있는데 왜 다른 곳의 공원묘지에 조희팔씨 납골묘를 썼나.

“피해자들이 몰려와 훼손할까 봐서다.”

-피해자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다단계와는 관련이 없다. 가족으로서 삼촌을 도왔을 뿐이다. 사기 피해자들과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소시민 피해자들에 대해 미안하고 안타깝게는 생각한다.”

-조씨가 사망한 뒤에도 계속 중국에 있었나.

“일단 대구로 돌아왔다. 삼촌 밀항시킨 죗값을 다 치렀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 없이 지내냈다. 그러고 있는데 강태용씨(조희팔씨의 최측근)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이 자주 왔다. 홀로 중국에 있다보니 어려움이 많아서 종종 도와주러갔다. 전에 삼촌이 강씨에게도 집을 마련해줬는데, 삼촌이 사망한 뒤에는 삼촌 집과 자기 집을 오가며 지냈다. 강씨가 공안에 체포될 당시에도 내가 함께 있었다. 난 죄가 없으니 공안에서 풀려나 한국에 왔다.”

-강태용씨가 정ㆍ관계 로비 장부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삼촌이 사망한 뒤에는 강씨와 함께 있었는데, 내가 아는 바로 그런 장부는 없다.”

-정ㆍ관계 로비가 없었다는 것인가.“

“장부가 없다는 얘기다. 돈 받은 사람들은 많다고 알고 있다. 누군지는 모른다.”

대구=차상은·김윤호 기자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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