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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의 움막자리 … 발전소 연기 멈추자 ‘청춘공장’으로

중앙일보 2015.10.16 01:29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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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로의 분위기는 독특하지만 소란스럽지는 않다. 젊은 사장들이 만들어 세련된 매력이 넘치는 가게들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 11일 카페 ‘벚꽃사이’ 앞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 [정현웅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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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좀 와봤다”는 사람들에게도 토정로는 생소한 지명이다. 서울화력발전소(당인리 발전소) 정문에서 양화진 지하차도까지 이어진 2차로 왕복길. 홍대 중심가에서 1㎞가량 떨어진 이곳은 교통이 불편해 찾아오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홍대의 번잡함에 지루함을 느낀 ‘힙스터(Hipster)’들은 토정로를 찾아 기꺼이 발품을 판다.

홍대 ④ 상수동 ‘토정로’
당인리 입구~양화진 지하차도
발전소 설비 2017년까지 폐쇄
전시장으로 꾸며 시민들에 개방
수제 맥주집 등도 속속 들어서

 토정로란 이름은 ‘토정비결’을 지은 토정(土亭) 이지함 선생이 이 일대에서 움막을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됐다. 이곳의 명물 중 하나인 ‘크래머리(Kramerlee)’는 독일 뮌헨공과대에서 양조학을 전공한 독일인 펠릭스 크래머(35)와 이지공(36)·이원기(37)씨가 함께 운영하는 수제 맥주집이다. 경기도 안산의 깊은 산 속에 있는 양조장에서 직접 뽑아내는 에일 맥주가 이 가게만의 자랑거리다. 이지공씨는 “맥주 제조에 물·보리·홉 이외의 어떤 재료도 넣지 않는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16세기 독일 영주 빌헬름 4세가 만든 양조 관련 법령)’을 지키는 게 우리 가게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적 규모의 패션쇼인 H&M 디자인 어워드에 참여했던 임재연(31·여) 디자이너는 토정로에 ‘아크로밧’이란 수제화 가게를 냈다. 임씨가 구두 디자인을 하고 서울 성수동의 장인들이 제작을 맡는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입소문을 탄 디저트 카페 ‘메르시, 네코’를 운영하는 이수지(32·여)씨는 “소란스럽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가게들이 많은 게 토정로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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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주택가였던 토정로의 분위기를 바꾼 건 ‘한국판 테이트모던’으로 변신 중인 당인리 발전소다. 1930년 지어진 국내 최초의 화력발전소로 산업 성장의 동력이었다. 하지만 발전소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와 소음 탓에 낙후된 공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서민들의 애환을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된 것이다. “저 멀리 당인리에/발전소도 잠든 밤 ….”(은방울자매 ‘마포종점’)

 변화의 계기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중부발전이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 조성 협약’을 맺으면서 만들어졌다. 현재 열병합 방식으로 가동 중인 4·5호기(1~3호기는 1970~80년대 폐기)를 2017년 말까지 폐쇄하고 그 공간을 전시장으로 꾸며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게 골자다. 앞으로 공원으로 조성될 지상 부지만 11만8779㎡(약 3만 평)에 달한다. 이미 굴뚝에서 내뿜던 연기는 사라졌다.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 김성수 사무관은 “저렴한 비용으로 예술가들에게 전시·공연 장소를 내주고 시민들이 직접 운영 주체가 되도록 할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청사진에 따라 토정로에는 30대 젊은 사장들이 만든 ‘청춘공장’ 같은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토정로를 스토리텔링화하는 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마포구는 지난달 17일부터 토정로 일대에 이지함 선생의 동상 등 각종 역사 조형물을 설치하는 ‘스토리텔링 거리 조성사업’에 나섰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토정로 주변엔 절두산 순교 성지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등 역사문화 자원이 풍부해 관광지로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장혁진 기자, 정현웅(성균관대 철학과) 인턴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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