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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간 108사찰 순례 … 매달 버스 120대 줄지어 달렸지요

중앙일보 2015.10.16 01:17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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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묵 혜자 스님은 “108산사 순례회 회원들이 군 장병들에게 주려고 모은 초코파이를 한 줄로 이으면 서울에서 부산도 갔다 올 거라고들 한다. 순례로 인해 지역 사찰과 지역 경제가 상생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첫 순례 때 40대였던 사람은 이제 50대가 됐고, 50대는 60대가 됐다.”

20일 대장정 마치는 혜자 스님
108명으로 시작, 금세 5000명으로
별세한 어머니 대신 딸이 찾기도


 꼬박 9년이 걸렸다. 선묵 혜자(108산사 순례회 회주) 스님이 2006년 9월 전국의 사찰 108개를 순례하자며 입재식을 할 때만 해도 생각은 소박했다. 108명의 신도와 함께 108개 산사를 찾자는 의향이었다. 순례객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120대의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줄지어 달려야 할 정도였다. 오는 20~25일 혜자 스님은 마지막 108번째 사찰 북한산 도안사를 순례한다. 대장정의 마무리를 앞두고 7일 서울 수락산에서 혜자 스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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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 스님이 모으는 108 염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소회가 어떤가.

 “마칠 때가 되니 순례객의 검은 머리가 흰머리가 돼 있더라. 한 달에 사찰 한 군데씩 찾았다. 그때마다 사찰명이 새겨진 염주 한 알을 나눠줬다. 지금껏 한 차례도 빠지지 않은 분들도 꽤 있다. 그분들은 9년 걸려 107개의 염주알을 채웠다. 마지막 사찰 하나를 순례하면 ‘108 염주’를 갖추게 된다.”

 - 순례단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중간에 돌아가신 분도 있다고 들었다.

 “순례 도중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며느리나 딸이 이어서 순례를 완주하는 것도 봤다. 어느 80세 노보살님은 순례를 다니다가 다리가 아파 버스를 탈 수 없게 됐다. 그러자 아들이 직접 차를 몰며 어머니를 태우고 6년간 이 순례에 동참했다.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도 있다.”

 - 사찰순례문화가 발달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불모지였다. 그걸 바꾸었다는 평가가 있다.

 “‘108산사 순례단’을 본 따서 50여 개의 사찰 순례단이 생겼다고 들었다. 지관 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으로부터 생전에 ‘한국 불교 1700년사에 전무한 일이다. 21세기 한국불교의 새로운 신행문화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매달 평균 4000~5000명의 순례객이 움직였다. 무려 120대의 버스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스가 줄지어 들어서면 장관이었다. 스님은 “순례객 상당수가 여성이다. 휴게소에 가면 순식간에 남자 화장실까지 여성 신도들이 덮어버릴 정도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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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묵 혜자 스님이 이끄는 ‘108산사 순례회’ 회원들이 줄지어 합장한 채 사찰로 들어가고 있다.

 - 그래서 어찌했나.

 “세 차례로 나누었다. 그럼 40대의 버스만 움직이면 됐다. 대신 나는 매달 한 사찰을 세 번씩 순례했다.”

 한 번은 해인사에서 순례를 마치고 버스가 출발해야 하는데 신도들이 늑장을 부렸다. 사찰 앞 좌판에서 각종 채소와 나물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혜자 스님이 “차 떠날 시간이니 얼른 가자”고 보챘더니 “한 달에 한 번 순례 오는 날은 가족의 저녁 밥상 차릴 일이 걱정이다. 찬거리를 살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혜자 스님은 순례단과 해당 지역의 직거래 장터를 연결시켰다.

 - 순례단에게도 일석이조이겠다.

 “매달 사흘을 한 지역에 가니까 3일장이 열리는 셈이다. 나중에는 가는 곳마다 지자체에서 아예 사찰 앞에 임시 부스를 꾸려 직거래 장터를 만들어 주더라. 순천 송광사에 갔을 때는 지역 특산품인 함초와 소금, 밤 등이 동이 날 정도로 잘 팔렸다.”

 - 사찰 앞에 초코파이 탑이 쌓인다는데.

 “순례 초기에 충남 논산의 관촉사에 갔다. 논산훈련소 군종병에게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초코파이’라고 하더라. 그때 순례단 3000명이 초코파이를 한 통씩 들고 갔다. 그때 장병들에게 법문하면서 ‘순례단이 신병교육대에 초코파이 폭탄을 투하하려고 한다’고 했었다. 그후 순례를 갈 때마다 신도들이 초코파이를 한 통씩 가져와 사찰 앞에 쌓았다. 소포장 박스 2000~3000개씩 쌓이니까 탑이 됐다. 그걸 전국의 일선 군부대에 보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초코파이 제조사 오리온이 감사패를 보내기도 했다.

 - 앞으로 계획은.

 “신도들이 많이 아쉬워 한다. 그래서 내년 초부터는 ‘53 기도도량’ 순례를 할 계획이다. 5년 정도 걸리리라 본다.”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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