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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논란’ 릴레이 취재일기①] 우왕좌왕 해온 역사 교육

중앙일보 2015.10.16 00:42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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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누구입니까.”

 30년 전 ‘국민학교’ 2학년 무렵의 일이다. 사회 시험에 대통령이 누군지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자신 있게 ‘전두환’이라고 적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힌 100점 시험지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런데 시험지에는 빨간 색연필로 ‘쫙’ 그은 오답 표시가 선명했다. “분명히 전두환이 맞는데…”라며 이유를 물었다. 선생님은 “정답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라고 했다.

 기성세대는 ‘뿔 달린 괴물’이 나오는 포스터와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라는 식의 ‘교실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때의 과도한 반공(反共) 교육은 사라졌다. 30년 뒤 지금의 고등학교 시험에는 북한의 천리마 운동 포스터가 나온다.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 보수주의의 소극성을 불사르라!”는 문구도 그대로다. ‘이 운동에 대한 설명을 고르라’고 한 후 정답으로 “대중의 정신력을 강화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는 운동”을 고르게 했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과거 30년간 좌·우의 극단에서 극단으로 달라진 우리 역사 교육의 단면이다. 또다시 30년 뒤 중년이 돼 있을 현재의 고교생들이 공유하게 될 미래의 ‘교실의 추억’이기도 하다. 그때의 학생들은 또 어떤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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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왕 교과서를 새로 만드는 김에 제대로 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래서 나왔다(본지 10월 13·14·15일 연재된 ‘역사 교과서, 이참에 제대로’ 기획 참조). 정치권의 논란은 국정화에만 맞춰져 있다. 야당은 “국정교과서는 ‘친일·유신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만 한다. 여당은 “교과서가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갔던 과거 못지않게 ‘왼쪽’으로 편향됐다”며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정작 교과서를 어떻게 잘 만들지, 어떻게 역사를 가르칠지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도 없다. 학계도 정치권과 크게 다르지 않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각자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나 복잡한 설명을 걷어내자 결국 “반대 진영 사람들만 없어지면 된다”는 주장만 남는다.

 익명을 원한 한 교수는 “오래된 밥그릇 싸움”이라고 했다. 그는 “진보·보수가 공유한 지식은 90% 이상 동일한데도, 10%도 안 되는 표현방식을 놓고 한자리에 앉지도 않는다”며 “역사학계의 폐해가 곪아터져 벌어진 일인데 역사학계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모두가 함께 대안을 만들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뺏고 빼앗는 전쟁을 치렀던 독일과 프랑스도 두 나라 학생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통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다. 자신의 치부와 잘못을 서로 인정한 결과다. 총칼을 겨누던 ‘원수국가’도 해낸 일을 우리는 한 나라 안에서도 못하고 있다. 서로 역사와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지금이라도 머리를 맞대고 얘기해 보자. 학생들이 잘못된 교과서로 공부하게 될까 걱정된다면 이제라도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 제대로 역사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자.

강태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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