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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역사 교과서를 이념과 정쟁으로 변질시키지 말라

중앙일보 2015.10.16 00:40 종합 34면 지면보기
역사 교과서 논란이 우려했던 대로 여야 간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정쟁으로 비화했다. 새누리당은 15일 긴급 의총을 열고 교과서 국정화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의원들은 “좌편향 교과서는 친북 사상을 퍼뜨리는 숙주”라며 국정화 반대세력과의 무한투쟁을 다짐했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란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가장 좌편향이라는 금성출판사 교과서조차 주체사상을 ‘개인 숭배’라고 비판했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하루 만에 철거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교과서 국정화를 ‘역사 쿠데타’로 규정하고 사흘째 장외투쟁을 벌였다. 국정화 관련 예산은 물론 내년 예산안과 노동개혁 법안까지 보이콧할 수 있다는 으름장도 놓고 있다. 시민 100만 명 반대 서명과 위헌 소송 카드도 만지작거린다.

 여야가 이렇게 교과서를 둘러싸고 사생결단식 역사전쟁을 벌이는 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결과는 공멸일 뿐이다. 특히 야당이 예산과 법안을 볼모 삼아 장외투쟁을 이어간다면 4대 개혁을 비롯해 모든 국정이 올스톱될 게 뻔하다. 학계·시민단체의 진보와 보수 세력 대결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온 국민들이 찬반으로 갈려 싸울 것이다. 정치권은 이렇게 나라가 두 쪽 나는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여야가 냉정하게 짚어야 할 것은 역사 교육의 본질이다. 역사를 어떻게 제대로 가르쳐 미래세대에 올바른 인식을 심고 나라를 발전시킬 것이냐가 논란의 핵심이 돼야 한다. 역사 기술은 이념적 주장에 좌지우지될 수 없는 사실(史實) 자체여야 할 뿐 국가분열의 빌미가 돼선 안 된다.

 새정치연합은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유신시대처럼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국사 교과서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언론의 비판과 시민단체의 감시가 보장된 민주화 시대엔 설득력 없는 논리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에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북한에는 관대하게 기술함으로써 편향성 논란을 자초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새누리당도 검인정 교과서를 자의적으로 짜깁기해 ‘친북’ 딱지를 붙이는 매카시적 구태를 버려야 한다. 교과서 국정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제시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게 집권당이 할 일이다.

 교과서 문제의 본질은 어떻게 좋은 교과서를 만드느냐다. 미래 세대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과 나라의 백년대계만을 염두에 두고 냉정하게 풀어가야 할 사안이지, 극한적인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야가 총선을 겨냥해 공학적 계산으로 접근한다면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 모두가 정권이 바뀌어도 끄떡없을 만큼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야당이 국정화 반대 논리로 든 헌법 정신 위배, 정권 홍보물 전락, 국격 저하 등의 우려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현실화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철저히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거듭 제안하고 있는 국민검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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