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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굽은 것과 미친 것은 구분하는가

중앙일보 2015.10.16 00:38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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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논쟁 앞에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찬반 의견에 모두 설득력이 있어서다. 모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너무 폄하했다는 반성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반면 권위주의 시대의 방법론인 국정화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도 타당하다.

 설득 논리를 반박하는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군사 정변을 주도하고 민주화의 시계를 늦춘 권력자를 국부(國父)로 칭송하기만 하게 될 것이라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대신 북한 세습 왕조의 독재보다 남한의 그것을 더 심한 것처럼 서술하는 교과서를 국가가 아니면 누가 고치겠느냐는 하소연도 그럴 듯하다.

 찬반을 다투는 토론에서는 정작 실증과 논리보다는 누가 얼마나 말을 잘하고 적절한 예시를 드는지에 따라 평가가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결론 내기가 쉽지 않다”는 무책임을 벗어나려면 공부가 필요한데, 역사를 검증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과 자료는 버겁기만 하다. 찬반론을 요약한 언론 보도는 또 어떤 맥락이 있는지 의심과 한숨이 이어진다.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막막함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토록 심오한 고민이 담긴 역사 전쟁은 그러나 여야의 전선이 확대되면서 더 복잡해지고 있다. 동시에 유치해지고 있다. 거리 곳곳에 나붙는 자극적인 플래카드는 교과서 논쟁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하기 시작했다.

 최근 불거진 김일성 주체사상 논란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선정적인 플래카드를 내걸면서 문제가 됐다. 새누리당은 좌편향 교과서가 북한 사상에 우호적이어서 아이들이 주체사상에 경도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현 정부의 교육 지침을 문제 삼았다. “정부 교육지침에 주체사상을 가르치라고 돼 있다”는 것이다. 현행 교과서를 검인정했으면서도 편향성을 문제 삼는 정부여당의 자가당착을 지적하려 한 것이다. 결국 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와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이 서로 벽을 보고 나누는 것 같은 대화를 나눠야 했다.

 ▶황교안=“주체사상을 가르치라는 정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은수미=“새누리당 플래카드 안 보셨어요? 위증을 하셨는데 자리를 내려놓으시겠습니까.”

 앞으로 정치권의 논쟁은 이렇게 흘러갈 공산이 크다. 굳이 역사책까지 들춰볼 필요가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교왕과직(矯枉過直)’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굽을 왕(枉)’은 ‘미칠 광(狂)’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여야 정치인들이 ‘굽은 것’과 ‘미친 것’도 구분하지 못한 채 헤어나오지 못할 싸움을 할까 봐 걱정스럽다. 교과서 논쟁 앞에 다시 한번 무력감을 느낀다.

김승현 JTBC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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