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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스타시장의 불공정 게임?

중앙일보 2015.10.16 00:35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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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논설위원

1000만 영화 ‘암살’을 볼 때 얘기다. 주인공 독립운동가 3명이 친일파 암살단으로 파견되기 전날 밤, 상해 임시정부 청사의 대형 태극기 앞에서 마지막 기념촬영을 한다. 결연하면서도 닥쳐올 운명을 예감하지 못한 천진한 표정이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다. 목에 출사표를 건 이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데, 그만 푹 웃음이 터졌다. 왜냐고? ‘대한독립만세’란 말을 듣는 순간 KBS 육아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유명한, 탤런트 송일국씨의 세 쌍둥이 아들 ‘대한민국만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일순 감정선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대한민국만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이들일 것이다. 귀여운 모습으로 광고시장까지 석권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아버지 송씨의 인기도 회복시켰다. 일각의 관측대로 송씨가 어머니 김을동 의원의 뒤를 이어 정치에 도전한다면, 그 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진 것처럼 보일 정도다. 어느덧 ‘대한민국만세’ 구호를 외칠 때마다 세 쌍둥이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나뿐일까?

 가족예능, 특히 육아예능은 우리 TV가 만들어낸 대표상품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원조 격인 ‘아빠, 어디가’는 중국판이 만들어지면서 ‘한국 예능 리메이크 붐’을 선도했다. 톱스타들의 가족이나 사생활 노출이 거의 없던 중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실제 스타들의 사생활 노출은 미국·유럽 등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자신의 일상에 가족까지 공개하는 국내 스타들의 모습이, 해외 팬들에게는 남다른 팬서비스 정신으로 좋게 받아들여진다는 해석도 있다.

 최근 육아예능은 유아, 사춘기 자녀를 넘어 장성한 성인 자녀들까지 확대됐다. 스타 자체가 최고의 콘텐트이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다. 그러나 일부 프로그램이 스타 부모의 스타지망생 자녀의 데뷔 코스쯤으로 자리 잡은 것은 문제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는 없고,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녀의 지위가 결정되는 것이 연예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TV 예능 프로에 계몽성을 요구할 순 없다 해도 세습사회를 부추기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라고 꼬집었다. 4명의 스타 아빠의 딸 전원이 연예인 지망생인 SBS ‘아빠를 부탁해’를 볼 때 그 찜찜함은 더하다. 이미 이 부녀들의 광고 나들이가 활발하다. 그나마 ‘개천용’ 신화가 통하던 최후의 보루가 스타시장이었기에 불공정 게임을 보는 듯한 찜찜함이 더 큰 것 같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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