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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엥꼬’ 났으니 ‘만땅’ 넣어 달라고요?

중앙일보 2015.10.16 00:01 경제 8면 지면보기
일본 의회가 집단적 자위권 안보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일본 자위대가 해외에서도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본이 70년 만에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자 우리나라의 여론은 들끓었다. 한국인들이 유독 일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침략의 과거사를 떠올려 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반응이기도 하다.

 그런데 모순되는 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가운데는 일본어 또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나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엥꼬’ ‘만땅’ ‘이빠이’를 들 수 있다. 기름이 떨어지는 경우 “엥꼬 났어요”라고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주유소에서는 “이빠이 만땅 넣어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엥꼬(えんこ)’는 원래 일본 말로는 자동차 등이 고장 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선 기름이 떨어진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만땅’은 한자어 ‘찰 만(滿)’과 영어 ‘탱크(tank)’를 합성한 일본식 조어다. 일본 발음으론 ‘만탕쿠(まんタンク)’인데 줄여서 ‘만땅’이라 하는 것이다.

 ‘이빠이’ 역시 일본에서 한자로 ‘일배(一杯)’라 적고 ‘잇파이(いっぱい)’라 읽는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말처럼 흔히 사용되는 경우다.

 이러한 말들은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쓰이고 있다. “엥꼬 났어요”는 “기름이 다 떨어졌어요”, “이빠이 만땅 넣어주세요”는 “최대한 가득 넣어주세요”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말로 ‘와리바시’ ‘다마네기’ ‘사시미’ ‘시다’ 등이 있다. 각각 ‘나무젓가락’ ‘양파’ ‘생선회’ ‘보조’ 등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다. 일식집에서 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밑반찬으로 딸려 나오는 여러 음식을 이르는 말인 ‘쓰키다시(つきだし)’도 있다. 국립국어원은 ‘쓰키다시’의 대체어로 ‘곁들이찬’을 선정한 바 있다.

  김현정 기자 nom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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