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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북 있어야 글로벌 명품 대접 받는다

중앙일보 2015.10.15 18:52
MCM·설화수·롯데….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의 제품에는 브랜드 이름을 딴 ‘0000’이 있다. 정답은 ‘브랜드북’이다. 브랜드북은 단순히 회사나 상품을 소개하는 브로슈어가 아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전략을 담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디자인돼 VVIP(소수상류층) 고객을 대상으로 고가에 판매되는 책자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책을 주로 편찬하는 프랑스 명품 서적 브랜드 애술린(ASSOULINE)에서 제작되는 브랜드북 가격은 권당 3만 9000원~129만원 선이다.

최근 국내 대기업이 이 브랜드북을 발간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명품 브랜드북을 통해 한 단계 ‘격(格)’을 높여 이미지를 제고하고, 글로벌 VVIP(극소수 상류층)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차다. 현대차는 최근 애술린(ASSOULINE)에 의뢰해 ‘현대(HYUNDAI)’ 브랜드로 브랜드북을 제작해 곧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책은 애술린의 최고가 라인인 ‘얼티밋 컬렉션(ultimate collection)’으로 제작된다. 책의 제작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프로스퍼 애술린 회장은 “현대차를 만드는 기술자들의 ‘장인 정신’에 감명을 받았다”며 “‘현대차’ 뿐 아니라 현대차를 만드는 사람들의 땀과 열정을 함께 담은 책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내 대기업도 브랜드북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브랜드북을 선보인 곳은 MCM이다. 독일 브랜드였던 MCM은 2005년 한국 성주그룹이 인수할 당시만 해도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명성이 쇠퇴했던 시기였다. MCM은 과거의 명성을 되살리고 세계적 브랜드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브랜드북을 만들었다.1980~90년대 초에 함께 MCM을 촬영했던 글로벌 스타들의 일상 속에 묻어난 MCM가방 사진을 모아 아카이브(마케팅 자료집)을 만들었다. 책의 발간 장소도 뉴욕의 플라자 호텔을 선정해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브랜드 ‘설화수’는 2012년 단일 브랜드 이름으로 책을 발간했다. 설화수는 당시 미국 뉴욕의 최고급 백화점인 버그도프 굿맨에 입점돼 있는 고급 브랜드였지만 미국의 다른 지역과 유럽에서는 낯선 브랜드였다. 설화수는 주색인 살구빛 색상의 브랜드 북을 통해 한방 화장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외국 화장품과의 차이점 등을 소개했다. 설화수는 이 책을 해외 VIP에게 선물용으로 제공하면서 브랜드 홍보에 활용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진출을 앞두고 해외 고객에게 브랜드를 알리자는 차원에서 결정한 일”이라며 ‘책’이라는 매체가 주는 소장가치와 외국인의 관점에서 본 전문적인 브랜딩 전략이 해외 VIP를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롯데의 경우는 명품관인 롯데 에비뉴엘 잠실점 개관을 앞두고 책을 냈다. 이 책에는 롯데를 방문한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모습과 해외 귀빈들의 사진, 모스크바에 있는 롯데 쇼핑의 이국적인 모습 등을 담았다. 겉장에는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가 명동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예술적인 느낌을 살렸다. 이 책은 애술린에서 제작한 쇼핑 센터 책자중 프랑스 명품 백화점인 봉마쉐 책자와 더불어 인기있는 쇼핑 책자로 꼽힌다.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명품의 조건이 헤리티지(역사성)와 희소성, 매니어 층의 확보인데 이런 부분에서 국내 브랜드가 해외 브랜드에 비해서 약한 부분이 있다”며 “명품 브랜드북을 발간하는 것 자체로 고급화된 이미지 형성과 스토리 텔링, 대중 브랜드와의 차별화 요소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브랜드북 발간이 곧 브랜드의 자존심으로 통했다. 샤넬·루이비통·까르띠에 등의 명품 브랜드가 애술린을 통해 브랜드북을 발간해왔다. 이로 인해 애술린이 출판하는 브랜드는 곧 명품이라는 공식이 생겨났다. 애술린에서 책이 나오는 것만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제고되는 경우도 생겼다. ‘고야드’와 ‘낸시 곤잘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고야드는 1853년에 출시된 프랑스 고급 브랜드였지만 2000년대 들어 마케팅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애술린 회장은 고야드 회장에게 ‘북 트렁크(book trunk)’제작을 의뢰했고, 파리에서 고야드 브랜드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고야드 트렁크에 애술린의 라이프 스타일 책 100권을 담은 ‘고야드&애술린’ 콜라보레이션(협업) 제품은 3000만원이 넘는 고가에도불구하고 대기 기간이 6개월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악어 가죽을 전문으로 하는 신생 브랜드였던 ‘낸시 곤잘라스’는 애슐린에서 악어가죽으로 된 3권짜리 책을 만들면서 고급 백화점에서 입점 러브콜을 받게 됐다.

애술린의 아시아 총괄 사장인 한영아 대표는 “철저한 브랜딩 전략에 따라 책이 만들어지고, 책을 소비하는 대상 역시 구매력이 있는 VVIP기 때문에 브랜드 입장에선 ‘니치 마켓(틈새 시장)’을 겨냥한 전략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책을 판매하는 부티크는 VIP의 사교장으로 통한다. 2012년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문을 연 ‘애술린 라운지’는 배우 장동건·정우성·현빈 등 유명인사가 샴페인을 즐기며 책을 관람, 수집하는 명소가 됐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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