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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불 질러놓고 뒤로 숨은 강동원 의원

중앙일보 2015.10.15 00:28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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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한국에선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의심하는 국민이 많은가요?”

 얼마 전 키르기스스탄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 만났던 현지인이 14일 보내온 문자메시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결과 조작으로 당선됐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중앙아시아의 후발 민주주의 국가인 키르기스스탄은 지난 4일 국회의원 총선거에 수(手)개표 대신 한국의 자동개표시스템을 도입했다.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넣는 즉시 광학판독개표기(PCOS)가 내용을 인식하고, 투표시각 종료와 함께 집계 결과를 출력한다. 이렇게 투표소별로 집계된 결과가 전산망을 통해 중앙선관위에 모인다.

 매번 부정선거 의혹으로 몸살을 앓아 온 키르기스스탄이었기에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기자에게 고마워했다. 한국의 개표시스템 때문에 선거를 신뢰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한국의 선거관리시스템이나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아직도 밑도 끝도 없는 개표조작설이 떠돈다. 그것도 국회의원이 확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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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에서 대선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뉴시스]


 강 의원이 부정선거 의혹의 근거로 댄 것은 중앙선관위의 개표시각 기록이다. “예컨대 경기도 이천시 증포동 제5투표구의 경우 오후 5시35분에 개표를 시작해 43분에 끝났다. 오후 6시까지 투표가 진행 중이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선관위는 “개표기 제어용 PC의 시각이 현재와 다르게 설정됐거나 단순 기재 착오”라며 “개표 부정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고도 한 달이 지난 상황에서 터져나온 부정선거 의혹에 청와대는 격분했다. 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수행 중인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14일 “ 박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고,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강 의원에 대해 국회윤리위 제소는 물론 의원직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조차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없는 부적절한 발언”(김성수 대변인)이라고 강 의원과 선을 그었다.

 대정부질문 이후 강 의원은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지 않는 건 물론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의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의원 면책특권은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발언에만 적용된다. 만약 강 의원이 자기주장에 자신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같은 주장을 다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당당히 나서지 못하고 면책특권의 방패막 뒤에 숨어 줄곧 언론을 피하는 모습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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