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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경희대 역사 교수 전원 "국정교과서 제작 불참"

중앙일보 2015.10.14 19:13
고려대 서울캠퍼스 역사 계열 학과 소속 교수 전체가 "국정 교과서 제작과 관련된 연구 개발, 집필, 수정 검토를 비롯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선언서를 14일 오후 발표했다. 이 대학 한국사학과 9명, 사학과 5명, 역사교육과 4명 등 18명이다. 이 대학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4명도 선언에 동참했다.

교수들은 이날 '한국사 국정 교과서 제작 참여에 반대하는 고려대 역사계열 교수 선언서'라는 제목의 글을 언론에 배포하고 "역사교육을 퇴행시키고, 나아가 교육 및 민주헌정질서의 가치를 뒤흔드는 정부와 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조치를 강력히 반대한다"며 "고려대 역사계열 교수들은 향후 진행될 국정 교과서 제작과 관련된 연구 개발, 집필, 수정 검토를 비롯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역사교육의 발전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한국사 교과서는 최근 들어 정부와 여당에 의해 이념 논쟁과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며 "많은 이들이 상식적 차원에서 반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은 집권세력의 당리당략적 이해 추구 외에 그 이유를 달리 찾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지난 12일 "중·고교 국사교과서를 현재의 검정제에서 국정 체제로 전환해 2017년에 중·고교에 입학하는 학생부터 국정교과서로 국사를 배우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국정 교과서 책임 편찬을 국사편찬위원회에 맡기겠다"고 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김정배 위원장은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005년 퇴직했다. 김 위원장은 교육부의 '국정 전환'발표에 배석해 "우수한 학자들을 국정 교과서 필진으로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 출신 대학의 후배 교수들이 '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내놓은 것이다.

이날 오전엔 경희대 사학과 교수 9명 전원이 '집필 거부 선언'을 했다. 교수들은 언론에 보낸 e-메일에서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시대의 퇴행이다. 한국현대사에서 감시와 통제의 시기로 간주되는 소위 유신시대로 돌아가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는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을 거부하며 역사 해석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인정하는 연구와 교육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13일엔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이 학과 전체 교수 13명 명의로 낸 보도자료에서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 13인 전원은 향후 국정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학과 교수들은 "정부와 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것은 학문과 교육이라는 안목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계산만을 앞세운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처신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대 역사 관련 학과 교수 34명도 지난달 초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한양대에서도 교수 40여 명이 지난 5일 비슷한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연세대·경희대·고려대와 마찬가지로 대학별로 역사 교수들이 "국정 제작 불참" 선언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가 다음달 초 국정교과서 전환을 확정 고시하는대로 집필진 구성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국편으로선 설령 집필 참여를 거부한 학자들에 대해서도 '삼고초려' 하며 집필에 응해 줄 것을 부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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