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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획정위원들, 속기록 남을 땐 조용 … 정회되면 당 대변인 돌변

중앙일보 2015.10.14 02:14 종합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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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A위원은 정회만 기다렸어요. 속기사가 발언을 모두 기록하는 획정위 공식회의 땐 온건하더니 정회만 되면 작심한 듯 특정 정당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4대 4 나뉘어 여야 대리전 벌여
“무조건 안돼” 8시간 필리버스터링
지령 막으려 휴대폰 뺏어도 무위
말만 독립 … ‘꼭두각시쇼’로 끝나


 선거구획정위 관계자가 13일 전한 회의 풍경이었다. 그는 A위원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꼭 그 당 대변인 같았어요. 아무튼 정회 한 번 하고 나면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는데, 지금 와서 보니 ‘증거’를 안 남기려고 정회를 이용한 게 아닐까 싶네요.”

 내년 20대 총선에서만큼은 게리맨더링(행정구역을 쪼개거나 붙여 기형적인 선거구를 만드는 행위)을 하지 않겠다며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바깥(중앙선관위 산하)에 독립기구로 꾸렸던 선거구획정위. 구체적인 선거구 구획정리는커녕 지역구 의석수를 몇 개로 할지, 농어촌 지역은 몇 개 줄일지도 정하지 못하고 “더 이상 일 못하겠다”면서 스스로 두 손을 번쩍 들고 말았다.

 획정위원장인 김대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위원 간 의견 불일치로 합의점을 찾아내기에 한계가 있었다”며 “정치 개혁이 나아갈 길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야 할 역할을 다하지 못해 국민께 다시 한번 송구함을 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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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년 선거구획정위원장이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20대 총선 선거구획정안 제출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획정위가 정치권의 ‘외풍(外風)’에 의해 사실상 활동을 접은 이날, 또 다른 획정위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위원들은 정말 해도 너무했어요. 통폐합 대상이었던 농어촌 지역구 중에 구제 대상을 논의할 때였어요.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약세인 지역의 한 선거구가 구제대상으로 꼽히니까 별다른 논리도 없이 ‘그건 안 된다’면서 필리버스터링(의회에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돌입했죠. 무려 8시간 동안이나.”

 지난 8일 회의 땐 이런 일도 있었다. 위원장을 제외한 민간위원 8명이 4(여 성향) 대4(야 성향)로 나뉘어 정당을 대리해 패싸움을 벌이자 획정위 사무처가 고심 끝에 위원들의 휴대전화기를 압수하고 회의를 시작했다. 각 정당으로부터 ‘지령’이 오는 걸 막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소용없었다. 한 획정위원은 “이미 강경파 위원들은 자신과 가까운 정당과 더 이상의 ‘교신’이 필요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여야 입장을 대변한 8명의 위원 중 정식으로 정당추천을 받은 사람은 사실 2명에 불과하다. 새누리당이 추천한 가상준 단국대 정외과 교수, 강경태 신라대 국제학부교수뿐이다. 획정위 발족 당시 여야 모두 ‘공정성’을 말하며 적극적으로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쇼에 가까웠다.

 45명의 획정위원 인력풀에서 8명의 위원을 고른 건 여야가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였다. 위원을 선발해놓고 보니 여당 전직 공천심사위원(한표환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교수)이나 야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했던 인사(차정인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들어 있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개특위를 통해 우회적으로 4명씩 ‘자기 사람’을 동수로 꽂아 넣은 셈이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획정위를 그런 식으로 구성해 놓고, 합의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털어놓았다.

 비록 스스로 ‘활동 포기’ 선언을 했지만 아직 공식 해산 상태는 아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전열을 추슬러 합의에 이를 길은 없을까.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는 게 큰 문제다. 선관위 측 위원을 늘려 무게중심을 잡는 것도, 표결방식(3분의 2 이상 찬성)을 바꾸는 것도 현행 공직선거법상 불가능하다. 획정위는 국회 정개특위가 선거구 획정의 가이드라인을 정해 내려줄 때까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선언해 버렸다. 말이 좋아 ‘독립적 기구’이지 실상은 정당에 종속된 ‘꼭두각시’였음을 자백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릴 거였으면 도대체 뭣 하러 획정위를 만들었는지 여야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글=남궁욱 정치국제부문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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