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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고객님 상대하느라 … 전화상담원 ‘맘고생’ 1위

중앙일보 2015.10.14 01:38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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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철인 올해 8월 인천국제공항 모 항공사 카운터. 중년 여성이 발권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며 장시간 항의했다. 항공권에 이름이 잘못 기재됐다는 이유에서다. 삿대질에 카운터를 손으로 치기도 했다. 이 여성은 보상을 해 달라고 했다. 직원이 사과하고 재발권을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직원은 답답해하면서도 그저 같은 대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항공사 관계자는 “막무가내 고객에겐 때로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아무리 손님은 왕이라지만 말도 안 되는 떼쓰기로 직원들을 죄인 취급하는 데는 어이가 없다. 그래도 어쩌겠느냐. 그 직원은 그 뒤 혼자서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고용정보원, 730개 직업 조사
경찰관·항공기 승무원도 상위권
세월호 여파로 해양경찰관 17위
“감정노동자 배려하는 문화 절실”

 서울 강남의 모 주차장에선 주차관리원이 모녀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민에게 구타당하는 일도 있었다. 승객의 성희롱과 폭언에 우울증을 앓은 KTX 여승무원은 올해 4월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고객의 기분을 맞추고 기업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려 감정을 꾹 누르고 일하는 노동자가 감정노동자다.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근로자가 이에 해당한다. 미국 버클리대의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 교수의 저서인 『통제된 마음』에 처음 등장했다.

 그런데 유독 심한 직종이 있다. 텔레마케터·호텔관리자·네일아티스트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730개 직업 종사자 2만5550명을 조사한 결과다. 전화·대면·전자메일과 같은 대인접촉 빈도와 외부고객·민원인 대응 중요도, 불쾌하거나 화난 사람을 대하는 빈도를 종합 분석했다. 그 결과 의료·항공·경찰·영업·판매 같은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근로자 대부분이 감정노동 강도가 셌다. 중독치료사, 창업컨설턴트, 주유원, 항공권 발권 사무원, 노점판매원, 취업알선원, 치과위생사와 같은 직종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경찰관도 민원에 시달리며 17위에 올랐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사건으로 주목받은 항공기 객실승무원도 이름을 올렸다.

 텔레마케터, 경찰관, 환경검사원, 항공기 객실승무원은 화난 고객을 상대하느라 진을 뺐다. 주유원이나 약사, 매표원, 호텔관리자, 사무기기 설치·수리원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그에 맞춰 응대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중독치료사나 자연환경안내원, 장례지도사, 보험대리인, 치과위생사는 다양한 외부고객을 설득하고 맞추느라 힘들어했다.

박상현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고객 만족 소비문화가 감정노동이라는 그늘을 만들었다”며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웃어야만 하는 이들에게 군림하기보다 배려하는 문화를 확산하고 정부도 정책 지원과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부터 ‘착한 소비문화 캠페인’을 펴고 있다. 감정노동자를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취지다. 올해 안에 감정노동자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 인정 기준도 마련할 방침이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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