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리포트- 대필 자기소개서 받아보니
한 포털 사이트에서 ‘자기소개서 대필’을 검색해보니 20여 곳의 블로그와 홈페이지가 떴다. 주로 ‘OO작가’ 형태로 불리는 대필 작가들은 돈만 내면 한 편의 그럴듯한 자기소개서(자소서)를 만들어준다. 대필 작가들은 간단한 신상 정보만 보내면 이를 토대로 내용을 꾸며낸 글을 보내주겠다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아마추어 취준생들이 쓴 자소서는 프로 작가들이 쓴 글과 차원이 다르다”며 홍보했다.
대필 자소서를 받는 방법은 크게 세 단계로 이뤄졌다. 첫째, 자소서 분량 등을 상의하고 이에 따라 금액을 이체한다. 비용은 한 편당 5만~10만원 선이다. 대개 200자(원고지 1매)에 1만원씩 계산된다. 3일 이내에 받아 보는 ‘특급 처리’의 경우 2만~3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둘째, 자소서의 재료가 되는 정보를 전달한다. 지원자의 성격·활동 사항·경험 등을 정해진 양식에 맞춰 e메일로 보내거나 전화로 상담한다. 셋째, 초고를 받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작가와 상의해 고쳐 쓴 뒤 완성본을 받는다.
유씨는 취업준비생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인기가 있다는 두 작가와 한 업체를 추천받았다. 작가들이 대신 써준 자소서엔 정말 특별한 뭔가가 있을까. 다음은 유씨가 세 군데에 의뢰해 받은 자소서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A작가의 자소설 (비용: 9만원, 분량: 1800자, 기간: 15일)
1.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과 후회하는 선택에 대하여 각각 한 가지씩 기술하시오.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금을 모아 □□살에 생애 첫 독립을 했던 것이 가장 잘한 선택 같습니다. 윗집의 하수관이 터져 물이 새는 바람에 천장을 뚫어놓은 채로 일주일을 지내야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림의 전반적인 활동을 직접 경험하면서 경제 관념이 생기고 강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 학점관리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탓에 그 외 다른 활동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얻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해당 자기소개서를 본 한 은행사 인사팀 관계자는 사실과 다른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글을 보면서 ‘하수관이 터지면 천장이 뚫리는지’ ‘왜 일주일동안 고치지 않고 지냈는지’ ‘독립을 하기 위해 돈은 어떻게 모았는지’ ‘경제 관념과 독립성을 기른 것이 직무와 어떤 관련이 있는 지’ 등이 궁금해졌다. 만약 면접에서 지원자를 만난다면 이 내용들을 물어보고 싶은데 이에 대해 과연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B작가의 자소설 (비용: 5만원, 분량: 1200자, 기간: 2일)
1.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과 후회하는 선택에 대하여 각각 한 가지씩 기술하시오.
미국 교환학생 시절, 다문화교류 클럽에 가입했던 경험이 저에게는 가장 큰 배움과 깨달음을 가져다 준 선택이었습니다. 다국적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걸어온 길 뿐만 아니라 살아온 환경이나 역사까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태국에서 3개월간 거주할 당시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태국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것이 제 인생에 가장 큰 후회로 남아있습니다.
8년차 모 증권사 인사팀 관계자는 "수백~수천 장의 자기소개서를 보는 인사 담당자 입장에선 지원자의 특색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자기소개서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실하고 솔직하며 대인관계가 좋은 인재를 뽑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자기소개서에 이런 표현만 반복된다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업체의 자소설 (비용: 6만원, 분량: 1800자 기간: 2일)
2. 인사 직무의 핵심역량과 이를 갖추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무엇입니까.
저는 대학 시절 법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인사 업무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적 자원 관리와 함께 다양한 계약서 검토 및 법적 사안에 대한 분석 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한 분야만을 바라보기 보다는 보다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아르바이트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의 현지 생활을 경험하며 책에서는 얻지 못하는 많은 역량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 대필 작가 백모씨는 “작가 대부분이 논술강사나 전직 기자 등 글을 잘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듯한 글을 만드는 것에 익숙하지만 제한된 정보로 창작하는 데엔 분명 한계가 있다”며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자소서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요소들로 항목에 대한 답을 채울 때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