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악용 소지 많은 후견인제 직접 방문 전수 조사한다

중앙일보 2015.10.14 01:17 종합 23면 지면보기
경남의 A씨(79)는 지난해 5월 창원지법으로부터 손녀(11)의 후견인으로 선임됐다. 여성과 동거해온 아들이 손녀를 낳고 사망한 데다 사실혼 관계의 며느리마저 연락이 닿지 않아 손녀가 홀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8월 창원지법 가사조사관이 A씨 집을 찾아가 확인한 결과 손녀는 집에 없었다. 나이가 많고 경제적 능력이 없던 A씨가 더 이상 돌볼 수 없다며 손녀를 교회 목사 부부에게 맡긴 것이다. 다행히 손녀는 목사 부부를 “아빠 엄마”라 부르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창원지법 국내 두번째 도입
재산 가로채는 행위 막기 나서
“대부분 친족 지정, 제도 보완 필요”

 문제는 후견인이 A씨로 돼 있어 목사 부부는 이 손녀의 학교나 병원 문제와 관련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손녀에게 지급될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급여도 신청하지 못하고 있었다. A씨와 목사 부부가 이 제도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원지법은 A씨가 후견인 역할을 못한다고 판단해 후견인을 목사 부부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손녀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다.

 창원지법은 지난 8월부터 가사조사관을 동원해 모든 성년·미성년 후견인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후견인 전수조사는 전국 법원 중 서울가정법원에 이어 두 번째다. 미성년 후견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성년 후견제도는 2013년 7월 시작됐다. 질병·장애·노령 등의 이유로 일상 생활이 힘든 사람에게 법적 후견인을 정해 본인 대신 재산 관리와 신상 보호 등을 도와주는 제도다. 기존 민법상에 성년자를 위한 금치산·한치산제도가 있지만 재산 관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노인·장애인의 신상·권익 보호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성년 후견제가 도입됐다.

 자신에게 치매 등의 상황이 생기기 전에 법원을 통해 미리 후견인을 선임해 놓는 ‘임의후견제도’도 있다. 법원에 후견인 선임을 해달라는 청구는 본인·친족·검찰·법원·지방자치단체장 등이 할 수 있다. 후견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가족과 친구·이웃·변호사 등이다. 후견인으로 선임되면 피후견인이 소유한 부동산의 관리·처분, 예금·보험 관리, 정기적 수입·지출 관리, 복지급여 신청·수령·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법적 대리인 권한을 갖는다.

 최근엔 가정 해체 등 다양한 이유로 후견 신청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와 관련, 자신의 부모나 형제·자매의 후견인으로 돼 있으면서 재산을 빼돌리거나 신상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악용 사례도 적잖을 것으로 법원은 파악하고 있다. 미성년 후견인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후견인의 85%가 친족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최문수 창원지법 가사3단독 판사는 “후견 신청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법원이 후견인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후견제도가 악용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며 “이 제도를 알리기 위한 교육과 안내책자 배부 등 홍보 활동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