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 황동규(1938~ ), ‘즐거운 편지’ 중에서
오직 사소한 것들만이 인생과 영화를 구원하리라

10여 년 후 감독 데뷔를 했고 ‘사소함’은 내 영화의 키워드가 되었다. 데뷔 초 ‘첫사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등을 찍으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영화를 만들리라 생각했다. 그런 내 영화는 거대 담론이 지배하는 시절 당연히 환영받지 못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동안 나는 ‘한국 영화계에서 사라져야 할 감독 1순위’였다. 그러나 내게 사소함은 일상성이고 디테일이며, 삶의 엑기스이자, 미학의 본질이고, 우주다. 모래 알갱이 안에 전 우주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도 틈틈이 되뇌는, 내 삶과 영화의 화두 같은 시다.
이명세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