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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영화제서 찬사받아도 상영되기 어려운 영화

중앙일보 2015.10.14 00:34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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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영화평론가

외화 수입배급사의 M사장은 영화계의 숨겨진 전설이다. 그는 영화의 수입, 배급, 제작과 저널까지 사업을 해봤다. M사장만큼 한국 영화계의 발전과 진통, 변화와 퇴행을 목격해 온 사람도 드물다. 지난해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아트영화 전문 수입배급사를 차린 것이다.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예술영화 수입 회사를 차린 이유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국내 영화시장 구조를 조금이나마 개선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구조의 정상화란 한마디로 ‘다양성의 회복’이다. 그의 영화사는 주로 유럽이나 일본의 예술영화, 비상업영화, 저예산 상업영화를 수입 배급한다. 그는 극장가에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영화만이 판을 치는 현 상황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겐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60% 선의 고공행진을 하는 것도 좋은 일만이 아니다.

 지난 1년간 국내에 수입돼 상영된 아트영화 계열 작품들이 보인 관객 동원 수치는 다소 민망한 수준이다. 그나마 기억되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모스트 바이어런트’나 ‘포스마쥬어:화이트 베케이션’ ‘화이트 독’ ‘이민자’ ‘투 피플’ ‘세인트 빈센트’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들 영화도 평단의 환호와 지지가 이어졌을 뿐 상업적 성과는 미미했다. 국내에 수입되는 아트 외화들 중 상당수가 이런 대우를 받는다. 문제는 이런 유의 작품들이 이제는 관객들을 거의 만날 수 없는 지경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외화 수입·배급 회사들이 대부분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이들은 지난 20년 중 최근 1~2년이 최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제 문을 닫고 영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까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의 임원까지 지냈던 P씨의 경우 프랑스 가족영화 ‘꼬마 니콜라’를 수입한 후 심한 내상을 입고 현재 칩거 중이다. 많은 지인이 그의 전문성을 아까워하며 재기를 독려하고 있지만 시장 자체가 이미 그와 같은 인재를 퇴출시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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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지경으로까지 몰아간 것은 국내 대기업 영화사와 그들이 운영하는 멀티 플렉스 체인망의 스크린 독과점 때문이다. 자신들이 만들고 유통시키는 영화에만 주로 자리를 내줌으로써 작은 외화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체인 극장들은 생색내기용으로 ‘아트관’을 운영하기도 한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인 CGV는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 국내에서 상영되는 예술영화, 비상업영화들에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아트영화마저 대기업 영화사와 대형 극장 체인들이 독식하려 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실제로 외화 수입사 관계자들은 CGV 아트하우스가 걸어 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저들은 우리의 영원한 갑”이라며 푸념 섞인 고백을 한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맨 먼저 외화 수입사들이 줄줄이 도산을 할 것이고 그렇게 한 축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국내 영화시장 역시 도미노처럼 붕괴할 수 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의 해결 방법은 노무현 정부 때 폐기된 스크린쿼터 문제를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 당시 스크린쿼터는 자국의 영화시장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146일로 강제했다. 객석 수 분포로는 40% 선이다. 이 얘기는 곧 40%가 보호선임과 동시에 그 이상을 넘기면 과도하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 역시 전체 스크린 수의 40%를 커트라인으로 삼으면 된다. 그러면 국내 전체 스크린 중 920개가 된다.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 수에서 이 수치를 넘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잠금장치를 하나 더 추가해야 이른바 ‘지역 쏠림 현상’까지 막을 수 있다. 각 극장당 한 영화가 스크린 수의 3분의 2를 못 넘게 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CGV왕십리점이라고 하면 전체 스크린 수 10개 중 한 영화가 6.3개를 넘으면 안 되도록 정해야 한다. 그래야 극장에 다양한 영화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긴다. 다양성의 생태계가 파괴되면 국내 영화산업도 얼마 안 가 공황 상태를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가 20주년을 맞아 성대하게 치러졌다. 상당수 언론이 영화제의 지난 성과를 진정으로 높이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화를 수입한 영화사 관계자들은 걱정의 먹구름이 머리 위에 잔뜩 끼어 있다. 이번 부산영화제 때 멕시코 미셸 프랑코 감독의 ‘크로닉’ 같은 작품은 관객들로부터 최대의 찬사와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제에서일 뿐이다. 일반 영화관에도 이런 영화들을 위한 ‘레드 카펫’이 깔릴 수 있을까. 예술영화, 비상업영화들에 대한 배려가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국 영화계의 20년 후도 밝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부산국제영화제의 20년 후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그 위기감을 영화계는 물론 관객들까지 좀 더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할 때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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