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이런 사람, 이런 국감, 나라 수준

중앙일보 2015.10.14 00:31 종합 34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도쿄특파원 시절인 2014년 초 모미이 가쓰토 NHK 회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본 중의원에 출석했다. 막 취임한 그는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위안부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다. 독일과 프랑스엔 없었다고 할 수 있나. 왜 네덜란드엔 지금도 ‘장식 창문(홍등가)’이 있는가”라는 상식 밖 망언으로 대형 사고를 쳤다. 그 뒤 야당에 의해 시도 때도 없이 의회에 불려 나왔다. 모미이의 모습은 하루하루가 가관이었다. 그가 출연하는 TV 생중계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왜곡된 사고나 망언만큼이나 눈에 거슬린 것은 일본 공영방송 수장인 그가 보인 태도였다. 똑바로 서 있지도 않고 시종 건들건들한 자세로, 질문하는 의원들의 시선을 피하며 옆자리의 참모와 쪽지를 주고받고, “무슨 질문입니까. 다시 한 번 해달라”를 반복하는 불성실한 행동에 야당 의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일본 언론은 그에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어리바리 돌격대’란 별명을 붙였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학교 성적보다 중요시한다는 ‘예의범절의 나라’ 일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일본인 지인들은 “사상이나 신념을 논하기 이전에 ‘기본’을 망각한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일본의 국격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창피해했다.

 ‘국정감사 무용론’을 부른 2015년 한국 국회의 국감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 이가 있었다. ‘무오류 인간’인 듯 행동하며 다른 사람에겐 ‘공산주의자 주홍글씨’를 마구 새긴 방송문화진흥원(방문진) 이사장이었다. 극우 네티즌들 사이에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는 그분의 ‘사상’이나 ‘신념’에도 동의하기 어렵지만 얼굴을 더 화끈거리게 만든 건 고약한 답변 태도였다. 의원들의 질문에 걸핏하면 “답변이 필요한가요” “(말하든 안 하든) 편한 대로 하시라”고 무시했고, “내가 위원님들처럼 소리치고 했다면 살인검사라고 소문이 났을 것” “신뢰도로 따지면 의원님들도 높은 건 아니지 않느냐”고 핀잔주기 일쑤였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의 한 여당 의원은 “자신이 X표를 친 사람과는 대화조차 안 하겠다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한국의 방문진 이사장이든 일본의 NHK 회장이든 인간관계와 소통의 ABC조차 모르는 이들이 맡아도 되는 자리일까.

 19대 국회 마지막 국감이 ‘비정상과 맹탕, 코미디’로 전락한 것도 모두 기본을 잊어버린 탓이었다. 피감기관장과 증인들을 잔뜩 불러 기다리게 해놓고 하루 종일 한마디도 묻지 않은 의원들, 여당 대표를 깎아내리려 헌법재판소 국감에서 사위 마약 사건을 캐물은 야당 의원, 국감 도중 노트북으로 회고록을 집필한 여당 의원, 증인 채택을 빌미로 뒷거래를 시도했던 수많은 의원과 보좌관들, “병이 위중하다”며 국회 출석을 거부한 뒤 양복 차림으로 병원을 활보했던 증인…. 국민의 수준이 국회의 수준, 정치의 수준이 나라의 수준이라는데 기본을 망각한 이 사람들에게만 손가락질을 하자니 ‘누워서 침 뱉기’처럼 느껴진다.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