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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여성 대통령은 또 나온다

중앙일보 2015.10.14 00:30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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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남성들이 말하는 ‘백년불망(百年不望)’론이 있다. 앞으로 100년 안에 여성 대통령은 나오기 힘들 거라는 얘기다. ‘제왕적 여성 대통령 돌려까기’ 혹은 ‘여성은 권력의 자리에 적당치 않다는 음해’ 같은 것인데, 은근히 전염성이 강해 여성들도 여성 정치의 퇴행을 염려했다.

 한데 요즘 여성들 사이에선 기류가 달라지는 움직임이 보인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안심전화 공천’ 파동 후 여성들은 과연 지금의 정치 파행이 박 대통령의 불통과 고집 탓이기만 한 게 맞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던 한 선배는 “요즘 김무성을 보면서 그동안 박 대통령이 권력투쟁만 하는 듯이 비춰진 게 남성 정치인들의 이간과 발목잡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됐다”고 했다.

 아직은 일부의 인상비평 정도이긴 하다. 대략 이런 얘기다. 김 대표는 ‘공천권을 국민에게’를 외치지만 알고 보면 지금 국회의원이 앞으로도 쭉 하겠다는 말 아닌가. 전략공천은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라는데, 배신이 일상화된 권력의 세계를 잘 아는 대통령이 설마 그런 기대를 할까.

 김무성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찌질한 남자 피로감’을 자극했다. 기자에게 “어느 언론사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상남자 인증을 하곤 이내 이어진 ‘여성의 몽니에도 이 상남자가 참는다’는 식의 인내 코스프레. 남자들의 이런 행동엔 여성의 책임도 크다. 남편의 찌질함은 못 참는 여성들도 아들의 일에는 집 나간 이성이 돌아오지 않는 약점이 있다. 이에 부부싸움으로 아들이 기가 죽으면 무턱대고 아들 편을 들고 며느리를 잡는 통에 남자들에게 피해자 코스프레는 엄마만 있으면 승리하는 전술이다. 한데 김 대표에겐 불행하게도 국민들은 엄마가 아니다.

 대통령이 독주하는 동안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대통령이 큰 실망을 준 것 중 하나가 경제민주화 공약의 후퇴였다. 이에 유승민 의원의 경제민주화 주장은 많은 공감을 얻었다. 한데 그가 경제민주화를 위해 한 거라곤 국회 연설과 대통령 골지르기가 전부였다. 구체적 실천 전략도 없고 실행을 위해 애쓰고 희생한 건 보지 못했다. 말만 앞세우며 ‘나의 충심은 이러한데 대통령 때문에 아무것도 안 된다’는 식의 애민(愛民) 코스프레만 하다 물러났다.

 원래 여성의 정치는 역사적으로도 왜곡당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여성이 권력의 전면에 섰던 한(漢)조의 여태후와 당나라를 닫고 주(周)왕조를 세우며 황제에 올랐던 측천무후의 경우엔 집권기 동안 백성들의 삶이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지만, 역사는 그녀들의 악행과 사후 측근들이 살육당한 혼란만 부각한다.

 반면 사심 없이 나라를 안정시켰던 여성의 정치적 공로는 별로 칭송받지 못했다. 예로 청나라 초기 청태종 홍타이지의 아내였던 효장태후는 요절한 남편의 뒤를 이어 6살짜리 아들을 황위에 앉혔고, 아들도 요절한 뒤 8살짜리 손자 강희제를 세웠다. 자신은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찬탈에 눈을 희번덕이는 섭정 신하들을 저지하며 정치를 안정시켰다. 효장태후가 없었다면 강희제의 태평성대도 없었다. 그러나 누가 효장태후를 얘기하는가.

 여성의 정치는 열등하지 않다. 그럼에도 ‘남자답다’는 말이 우월성을, ‘여자같다’는 말이 열등함을 표현하는 형용사로 쓰이는 문화권에서 세뇌당한 남녀들은 습관처럼 남성 권력에 안정감을 느꼈다. 그래서 요즘 일이 안 돌아가면 다 대통령 탓이라고 해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여자가 고집이 너무 세면 재앙이라는 식의 공감대를 확산시키면서 말이다. 한데 곰곰이 복기해 보면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사보타주하거나 복지부동한 건 남성정치인들이었다. 여성들은 이제 이를 복기하며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젠 남성정치인들도 ‘대통령이 나빠요’를 연기하는 건 그만하고, 진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실행해야 할 거다. 유권자 절반은 여성이다. 100년 안에 여성 대통령은 또 나올 거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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