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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2021학년도 수능, 일찌감치 미궁의 문을 열어야

중앙일보 2015.10.14 00:29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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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예술작품에는 항상 의미가 있는가?’ ‘정치는 진실의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올해 6월 치러진 프랑스의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철학 문제다. 시험이 시행되는 날 수능과 바칼로레아가 전국적인 뉴스로 등장한다는 점은 두 나라가 공통되지만 관심의 종류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수능 난이도와 등급별 컷 점수가, 프랑스에서는 논술 주제 자체가 초미의 관심사다. 프랑스인들이 카페에 둘러앉아 논술 주제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건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바칼로레아는 채점 과정에 주관성이 개입된다는 한계를 갖는다. 하지만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시험의 가치를 채점 결과의 객관성보다 우선시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프랑스는 20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프랑스의 자부심인 바칼로레아의 우아한 문제를 수능에 접목시키고 싶어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최근 수시 위주로 선발을 하면서 수능의 영향력이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수능은 수험생을 촘촘하게 줄 세우는 기능을 한다. 그에 반해 바칼로레아는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갖추었는지 절대평가로 너그럽게 판정해 주는 시험이니, 공정하고 변별력 높은 수능을 요구하는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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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고시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2018년부터 적용되고, 현재 중학교 1학년은 새 교육과정에 따른 2021학년도 수능을 치르게 된다. 수능 개편안은 대입 3년 예고제에 따라 2017년까지 확정하면 된다. 하지만 벌써부터 모든 경우를 대비하라는 불안마케팅이 횡행하고 있으니 가능하면 발표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수능 개편안 논의에서는 수능의 성격부터 명확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예전의 학력고사와 같이 고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로 회귀할지, 1990년대 초기 수능과 같이 대학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적성 검사에 방점을 찍을지 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수능 대상 과목과 범위다. 새 교육과정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함양시키기 위해 문·이과 통합을 지향하는 만큼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를 포함하고 이미 필수가 된 한국사까지 가세하면 기존의 국어·영어·수학과 더불어 총 6과목이 된다. 모두를 공통으로 할지, 일부를 선택으로 돌릴지 과목들을 펼쳐 놓고 금을 그어야 한다. 시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모든 학생이 보는 공통수능과 상위권 대학 지원 학생만 보는 선택수능으로 이원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수능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복합적이다. 수능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융·복합 인재 양성을 유도해야 하고 수험생의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도 충실한 대입 전형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수능은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해야 하는데, 일각에서는 수능에 포함돼야 제대로 학습이 이뤄진다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수능과 무관해야 문제풀이식 수업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의 기준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처방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논의에 앞서 제안하고 싶은 첫 번째 원칙은 수능에 대한 담론을 초기부터 공개하라는 것이다.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최종 안을 공론화하는 공청회 전까지는 폐쇄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합의되지 않은 안들이 혼란스럽게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능이라는 미궁의 문을 일찌감치 활짝 열어 초기부터 공개적인 비판을 받는 것이 낫다. 수능에 대해 사람마다 진단과 해법이 다르고 상호 갈등적인 기준을 충족시키라는 요구가 공존하기 때문에 이런 난상토론을 조기에 접하게 되면, 최종 안을 덜컥 접하게 될 때보다 반발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은 정련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흘러나오는 상황을 비판하기보다는 여론 검증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수능과 관련된 두 번째 원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보다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다. 사교육이 늘어날 부작용에 얽매여 시험 과목과 범위를 축소하기보다 학생에게 의미 있는 내용이고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능력이라면 수능이라는 장치를 통해 익힐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어차피 경쟁 상황은 동일하기 때문에 내용이 감축된다고 해서 학습 부담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방대하면 출제자가 직구로 정직하게 물을 수 있지만 내용이 줄어들면 온갖 변화구를 구사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담은 더 소모적이다.

 대학입시는 수능, 학생부와 내신, 대학별 고사 사이의 역학 관계로 이뤄지므로 수능은 입시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며 묘수풀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입시생태계는 초기값을 약간만 변화시켜도 결과가 심각하게 달라지는 카오스적 성격을 띤 복잡계다.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범국민적 수능위원회를 구성하고 모든 논의를 개방하는 것이 복잡계를 다루는 현명한 방법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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