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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변호사는 되고 주부·농민은 안 되는 ISA

중앙일보 2015.10.14 00:01 경제 1면 지면보기
전업주부 정모(35)씨는 투자수익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내년에 도입된다는 소식에 거래은행에 가입을 문의했다가 분통터지는 얘기를 들었다. 은행 상담원이 “ISA는 근로소득자나 자영업자만 가입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출산과 동시에 사직한 정씨는 “눈치가 보여 육아휴직도 못 써 보고 그만둔 것도 억울한데 주부가 된 후 정부의 각종 금융지원 정책에서 소외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세제 혜택 받는 만능통장
근로·사업소득자로 대상 한정
사회 취약 계층은 제외돼
영국·일본은 나이만 제한

 정부가 “일반 국민에게 재산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며 연 2000만원까지 5년간 투자수익에 대해 면세해 주기로 한 ISA. 그러나 정작 주부나 계약직 형태의 비정규 근로자는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논란이 일고 있다. 최고경영자(CEO) 같은 고액 연봉자, 의사·변호사 같은 전문직도 가입 가능한데 정작 사회 취약계층은 수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건 근로·사업소득자로 제한한 가입 요건이다. 이 요건 때문에 전업주부도 배제됐다. 전업주부는 국민연금마저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론 임의가입자로 가입할 수 있지만 10년 이상 납부해야 수령이 가능해 중장년 주부 대다수가 가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 가입자(2113만 명) 중 전업주부 비중이 1%(20만 명)가 채 안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박병우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상무는 “남편의 소득을 부부의 소득으로 보고 이혼할 때도 전업주부의 재산 형성 기여를 인정하지 않느냐”며 “금융·세제 정책이 저소득층이나 근로자 위주로 설계되다 보니 전업주부가 배제되고 노후 대책 마련이 안 돼 노령 여성 빈곤율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대로면 농어민도 제외된다. 영농법인을 설립했거나 소속된 경우가 아니면 근로소득자에도, 사업소득자에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어민은 사업자 등록을 가진 경우가 많고 농민은 소득 대부분이 비과세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던 기획재정부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관련 문제가 제기되자 “농어민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농어민은 구제받을 길이 생겼지만 처지가 비슷한 비정규 소득자는 아니다. 영화 조연출로 일하는 최모(26)씨가 이 경우다. 그는 지난해 연간 700만원가량을 벌었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영화업계 특성상 기타소득세 3.3%를 떼는 기타소득자로 분류된다. 이로 인해 근로소득자에게 연 소득 500만원까지 주는 면세 혜택도 받지 못한다. 최씨는 “영화판엔 중소기업 직원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정부의 각종 세제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천창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어민이 ISA에 가입할 수 있게 되면 2017년까지 한시적으로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는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더해 이중 혜택을 받게 되는데 정작 기타소득자는 아무런 혜택도 못 받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기재부 측은 “가입 요건 완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업주부는 증여를 받아 ISA에 가입할 가능성이 큰데 증여소득에 대해 혜택을 주자는 건 정책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논리다. 기타소득자에 대해선 “농어민과 달리 작가 같은 집단에선 가입 요구가 없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천 연구위원은 “우리처럼 고령화 시대 노후자금 마련과 금융자산 확대를 목표로 ISA를 도입한 영국·일본은 나이 제한 외엔 다른 가입 요건이 없다”며 “제한을 둬야 한다면 연간 소득 상위 10% 혹은 연봉 8000만원 이상을 제외하고 다른 취약계층은 포함하는 게 정책 취지에 맞다”고 강조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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