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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팀워크 깨면 불려간다, 김태형 ‘커튼 리더십’

중앙일보 2015.10.13 01:03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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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감독

그는 커튼 뒤에 있었다.

OB시절 주장 때부터 ‘군기 반장’
MVP상금 안나누겠다 버틴 우즈
라커룸 커튼 뒤에서 단숨에 제압
올 두산 맡으며 개인보다 팀 강조
타율·자책점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끈끈한 뚝심으로 리그 3위 이끌어

 1998년 어느 날 OB(현 두산) 베어스 주장 김태형은 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를 잠실구장 라커룸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커튼을 쳤다.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키 1m73㎝의 김태형이 근육질의 우즈(1m85㎝)를 단번에 제압했다는 건 분명하다.

 그날 우즈는 경기 MVP(최우수선수)에 올라 상금을 받았다. 김태형은 “우리는 상금을 다른 선수들과 나눈다. 외국인이지만 너도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우즈가 반발하자 김태형이 군기를 단단히 잡았다. 그는 팀워크를 해치는 선수는 용서하지 않았다. 라커룸에서든, 구단 버스에서든 그가 커튼을 치면 선수들이 벌벌 떨었다.

 선수 시절 김태형은 ‘불곰’으로 불렸다. 덩치가 작고 기량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도 그를 얕잡아 보지 못했다. 후배와 곧잘 장난을 쳤지만 누구보다 엄한 선배였다. 구단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졌지만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었다. 김태형은 2000년까지 3년간 주장을 맡으며 두산의 끈기있는 야구를 이끌었다. 두산 구단은 그를 미래의 감독으로 점찍었다.

 그는 여전히 커튼 뒤에 있다.

 지난해 두산은 6위에 그쳤다. 무엇보다 끈끈한 팀워크가 사라졌다. 지난 겨울 두산 지휘봉을 잡은 김태형 감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했다. 불곰의 복귀에 두산 선수단은 바짝 긴장했다. 최선참 홍성흔(38)은 “나는 아직도 감독님이 참 무섭고 어렵다. 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여전히 두려운 분”이라고 했다.

 만 48세의 김태형은 젊은 감독에 속한다. 그러나 별로 부드럽지 않다. 지난 7월 24일 김 감독은 NC와의 창원경기 8회 공격 때 김재호(30)를 불러세웠다. 뒷짐을 지고 김 감독의 말을 듣는 김재호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내야 땅볼을 치고 1루로 천천히 뛰어가는 걸 질책하는 것으로 보였다. 두산이 5점 차로 앞섰고 김재호의 타구는 아웃이 될 게 확실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김 감독은 “야단을 친 건 아니다. 체력적으로 힘들 때지만 열심히 해보자고 했다. 선배가 지치면 후배들은 더 지치는 법”이라고 말했다.

 정색하고 혼을 내지 않아도 김 감독의 말에는 힘이 있다.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라는 원칙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런 힘이 모여 두산은 정규시즌 3위에 올랐다. 지난해와 비교해 팀 타율(0.293→0.290), 홈런(108→140), 평균자책점(5.43→5.02) 등의 지표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지만 두산의 팀컬러가 살아난 덕분이다.

 김 감독은 언변이 좋고 위트도 있다. 그러나 말수가 적다. 자신의 말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뜻이다. 그는 감독이 되어서도 커튼 뒤로 숨었다.

 그는 커튼을 잠시 걷어냈다.

 지난 9일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공식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조상우(21·넥센 마무리 투수)가 너무 많이 던져서 걱정된다. 선수 미래가 있는데 저렇게 던져도 되나 싶다”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조상우는 앞선 7일 SK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8회부터 연장 10회까지 3이닝을 던져 무실점을 기록했다. 투구수가 49개에 이르렀다. 김 감독은 조상우를 보고 “어리니까 아무 것도 모른다. 감독이 시키니까 죽어라 던진다”고 말했다. 두산 감독이 넥센 투수의 과로를 걱정하는 건 분명 이상한 상황이었다.

 능글맞은 김 감독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염경엽(47) 넥센 감독도 웃긴 했지만 속이 복잡했을 것이다. 조상우는 지난 1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 3-2이던 8회 등판해 2이닝 1실점으로 세이브에 실패했다. 염 감독으로서는 김 감독의 말이 신경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김 감독은 사령탑에 올라 첫 포스트시즌을 치르고 있다. 지장(知將) 염 감독을 상대로 뚝심 있는 승부를 치러 1·2차전을 모두 이겼다. 2015년 두산의 포스트시즌이 어떤 결과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김 감독의 두산이 분명 달라졌다는 것 만큼은 보여줬다. 가을 승부가 끝나면 그는 다시 커튼을 닫을 것이다. 커튼 뒤의 김태형 리더십은 더 힘을 받을 것이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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