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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의 노벨상 이야기] 전통·현대 융합, 중국 노벨상 … 자중지란 한국호는 어디로

중앙일보 2015.10.13 00:37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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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가끔 예상치 못했던 분야와 사람들이 노벨상을 탈 때가 있다. 올해 생리·의학 분야 수상자인 투(중국), 오무라(일본)와 캠벨(미국)이 그런 경우인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기생충 약물의 개발로서 수상한 것은 이례적이다. 기생충학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선진국에서는 외면받는 분야이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제발전과 더불어 보건체계가 선진화되면서 기생충의 위협이 감소하다 보니 지원도 적고, 연구하려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성과는 창의성 보다는 인내와 열정의 산물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오무라는 토양미생물에서 항생물질을 찾겠다고 여기저기서 흙을 채취하며 발품을 팔았고, 캠벨은 초대형 제약기업인 “머크”社의 첨단 인프라로 항생물질을 찾던 중 오무라가 보내 준 미생물에서 기생충을 죽이는 활성을 찾아 개발했는데 그것이 ‘아버멕틴’이다. 투는 1967년 마오쩌뚱의 지시로 만들어진 인민해방군 산하 비밀사업인 ‘523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연구하면서 중국 고서(古書)의 도움으로 치료물질을 찾았다. 이들의 연구에는 매력적인 가설도, 첨단기술의 사용도, 지식의 변경을 넓혀주는 실험 데이터도 없었으나 그 결과는 인류의 보건향상에 기여하였다.

구미 선진국이 주도하는 21세기 과학인 생리의학 분야에서 중국인의 수상은 특히 놀라운 일이다. 아시아에서 과학의 최대 강자인 일본이 자국 내 연구 성과로 받은 물리와 화학 분야의 수상자는 십수명이지만 생리의학에서는 2012년 야마나카와 올해 오무라, 단 2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이번 수상은 큰 사건이다. 게다가 상금 배분 비율이 1:1:1이 아니라 투가 다른 두 사람 보다 2배를 더 받는 2:1:1이니 중국인들은 더욱 어깨를 으쓱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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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상에서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수상자들의 연구방법을 비교하는 것이다. 거대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의 캠벨과 오무라는 수많은 정체불명의 토양에서 미생물을 채취하고, 그것들을 배양하여 항생작용이 있는지 조사했다. 고도의 지적 설계가 없는 무작위적 실험 방법이므로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올 확률이 커지겠지만, “運발”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연구였다.

반면 문화혁명의 소동으로 피폐해진 중국에서, 투는 고서를 뒤져 말라리아 증세에 해당하는 징후에 쓰이던 약초들을 선별하고, 서양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해서 그 책에 쓰여있는 효능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어찌 보면 답을 미리 알고 시작한 것이니 시행착오를 줄여서 많은 자원을 절약한 것이다. 투는 오무라와 캠벨의 1/100도 안되는 비용으로, 역사 속의 정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아르테미시닌’을 분리한 것이다.

신약을 개발할 때 전통의약은 ‘아이디어 창고’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과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서 현대적 실험방법을 동원해야 지금 시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의약이 발달해서 많은 정보와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몇개 안되는 바이오 분야 중 하나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는 법적으로 ‘천연물의약’이라는 분류가 있는데, 대부분 식물에서 추출한 것이고 그 아이디어는 한의약 정보에서 나온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의약품 5개 중 3개가 이런 방법으로 개발되었는데 아직 선진국 거대시장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천연물의약의 세계화를 저해하는 요인은 단 하나, 즉 유효성분에 대한 이해 부족과 그에 따른 품질관리의 어려움이다. 이 문제만 극복한다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중국은 수년 전 부터 이런 사업에 수천억원 단위 규모의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감사원과 국정감사에서 천연물의약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며 “천연물 때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어느 국회의원은 과다한 정부투자, 안전성과 유효성 문제, 보험 급여 적용, 허가절차 완화 등을 질타했다. 옳은 지적도 있지만 틀린 사실도 많은 비판이었다.
정작 어처구니 없는 것은 조금만 시끄러워져도 문제를 덮고 넘어가려는 공무원의 속성 상 유관 부처는 아예 분야 자체를 포기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빈대 잡는다고 집 태우는 격이다.

이와는 별도로 한의사들은 천연물의약이 자기 시장을 잠식한다고 공격하고 있고, 양의사와 한의사는 영역 싸움으로 사사건건 다투는 등 나라 전체가 이해당사자들 간의 이권 다툼으로 자중지란에 빠져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이 분야에서는 우리가 중국을 앞서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투가 관여했던 523프로젝트에서는 마오쩌뚱이 내린 ‘전통의학의 과학화’ 지시가 큰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과학계에는 마오 만큼 자신감과 안목를 가진 사람이 없단 말인가. 우리 조상들이 쌓아 놓은 지적 재산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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