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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애슐리 매디슨 해킹으로 드러난 미 관료의 민낯

중앙일보 2015.10.13 00:34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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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와이너
작가

한때 미국은 위대했다. 소아마비를 퇴치했고 비행기와 치킨 너깃,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 달에도 갔다. 그런데 지금은? ‘루저’ 국가가 돼버렸다. 이쯤 되면 알 것이다. 애슐리 매디슨 사태를 말하는 것을. 이 사이트가 해킹당한 결과 3200만 명에 달하는 불륜 희망자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미국인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구글 뉴스에 들어가 ‘애슐리 매디슨 해킹’을 검색해 보라. ‘내 이름의 공개 여부’란 링크가 줄줄이 나온다.

 애슐리 매디슨을 공격한 해커들은 이 사이트가 개인정보를 보호해 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실을 알리려고 회원 명단을 공개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알게 된 건 우리의 친구·이웃과 미 연방 정부 공무원들의 민낯이었다. 특히 공무원은 국민의 혈세를 대가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직장 e메일로 불륜 사이트에 등록할 만큼 멍청한 공무원들이 일하는 나라가 과연 위대해질 수 있을까.

 미국은 내리막길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져서가 아니다. 지난주 내내 미국 전역을 돌며 내가 쓴 책을 홍보하는 투어를 했다. 매일 다른 도시를 찾다 보면 보통 미국 사람들의 민낯을 볼 수 있다. 평소 매너 좋기로 소문난 신사가 공항에서 허리띠를 맨 채로 검문기를 통과하려다 제지당하는 모습, 보안요원이 “액체는 안 됩니다”라고 외치는데도 생수병이 든 가방을 태연히 검색대에 올리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인자해 보이는 어머니가 돌연 아이의 뺨을 거칠게 때리는 모습, 건장한 남성이 바퀴 달린 대형 가방을 기내 좌석 위 선반에 쑤셔박으려다 실패하자 욕설을 퍼붓는 모습도 봤다. ‘카트 금지’라고 쓰인 표지판 앞에서 카트를 밀고 가는 사람을 보고 한마디 하려다 참은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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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위대했던 미국은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나라가 됐다. 지난 주말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정숙칸(Quiet Car)’에 탔다. 남녀 한 쌍이 엄청나게 큰 여행 가방을 밀고 정숙칸에 들어섰다. 이들은 큰 소리로 “가방을 어디에다 둘까?”라고 외치며 고민을 거듭했다. 자신들이 복도를 막고 서는 바람에 승객 수십 명이 줄지어 선 모습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한참 뒤에야 좌석에 앉은 남녀는 천장에 붙은 ‘정숙’ 표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돌연 소리를 질렀다. “아, 여기가 정숙칸이네. 우리가 정숙칸을 탔어!”

 참다 못한 옆자리 승객이 “쉿!”하며 주의를 줬다. 그러자 남녀는 또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는 정숙칸이니 정숙해야겠구나!” 이번엔 뒷자리 승객이 “쉬잇!”이라고 다시 주의를 줬다. 그 순간 남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 프레드!” 그가 외쳤다. “나 지금 기차 탔어! 그런데 정숙칸이야!” 작가 프랜 레보위츠는 범죄를 종류별로 구분해 유용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나는 기차에서 내린 뒤 그 카테고리에 신종 범죄가 추가돼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정숙칸에 탑승했음에도 정숙하지 않은 죄’가 그것이다.

 애슐리 매디슨 가입자 가운데 1만5000명이 미국 정부나 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또 하나의 신종 범죄가 레보위츠의 카테고리에 추가돼야 한다. ‘공무원 신분으로 불륜 사이트에 가입하면서 직장 e메일을 이용할 만큼 멍청한 죄’다.

 나도 안다. 공무원들이 쓴 직장 e메일 상당수는 아마도 가짜일 것이다. 민간인 중에도 직장 e메일이나 실명을 써서 애슐리 매디슨에 가입한 이도 많다. 그중엔 바티칸 교황청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규칙을 명백히 위반한 행동이다. 아마 바티칸의 죄인들은 교황님이 알아서 처리하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륜 남녀들에겐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내 돈으로 그런 행각을 즐기는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애슐리 매디슨 가입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수도인 워싱턴DC다. 이번 해킹 사건으로 가입 사실이 탄로난 사람 가운데 다수는 미 연방 법무부와 국가안전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보다 앞장서 법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아이러니가 세계의 수도라는 워싱턴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워싱턴이 불륜 남녀의 온상이란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왜 이리 ‘멍청한’ 불륜을 저질러야 하나? 불륜을 저지르기 전 핫메일이나 지메일에 들어가 e메일 계정을 만드는 노력조차 피할 만큼 게으른 사람들이 공무원이라니 기가 차다. 5분만 시간을 내 사이트에 들어가서 동의 버튼을 눌러주고 비밀번호를 지정하면 끝인데 말이다. 그러면 ‘내 아내는 아무것도 몰라@comcast.net’ 같은 근사한 e메일 주소를 얻을 수 있다.

 자, 미국의 자랑스러운 공무원들이여, 다시 한번 조국을 위대하게 만들자. e메일 만드는 수고마저 기피하면서 일부일처제에서 탈출하려다 패가망신하는 그런 나라가 되지 말자. 바람 피울 거면 좀 똑똑하게 피우자.

제니퍼 와이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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