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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자존의 도시, 대구의 변신

중앙일보 2015.10.13 00:26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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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영남의 수부 대구는 조선 국왕을 우습게 본 자존(自尊)의 도시였다. 안동의 이황과 김성일, 경주의 이언적, 하회 유성룡가(家)의 학맥과 인맥을 두루 담아내는 성리학의 거점 도시였다. 영남 우도(右道)의 거창·산청·함양의 인재들도 대구로 몰려들어 그 위세는 한양을 압도했다. 조선 500년 동안 안동 권씨, 경주 김씨 등 영남 좌도(左道)가 배출한 과거 합격자만 1000여 명을 훌쩍 넘겼다. 강화도조약을 철회하라고 1만 명 유림의 연명장을 들고 소행(疏行)을 결행한 것도 이 지역이었다. 푸른 옷에 푸른 띠를 두르고 광화문으로 진격하는 영남 선비들의 행진에는 기개가 넘쳤다.

 그들의 가치관은 그대로 세계관이었고, 판결은 국법이었던 이 권력의 도시는 20세기에도 대통령을 다섯 명이나 배출했다. 위정척사, 곧 ‘개화는 망국’임을 굳건히 믿었던 원조 보수의 도시가 수출 주도 성장을 이끈 대통령과 산업역군들을 타 지역으로 부지런히 송출해도 지역정서는 여전히 무변(無變)과 온고(溫故)였다. 성리학적 정통을 잇는다는 무의식적 책무가 자존과 배타성으로 표출되었는지 모른다. 정조시대 문장가 이옥(李鈺)의 시처럼, 대구는 오랫동안 “독 안에서 별을 헸다(甕中之語星辰也)”. 별자리(星辰)는 조선 선비에게 세상의 이치를 캐는 기호다. 근처의 울산과 포항이 천지개벽을 하는 동안 대구는 독 안에서 별자리를 헸던 거다. 옹고집, 독백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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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대한민국 3위 자리를 인천에 내줬다. 인천은 300만 명 규모를 돌파하며 팽창하고 있는데, 대구는 250만 명 선이 지난해에 붕괴했다. 광역지자체 16개 중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꼴찌, 개인소득 중위권이었고, 이렇다 할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시민 1만5000명이 일자리를 찾아 매년 고향을 등지는데 그중 청년층이 절반에 달한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1만 명의 대학 졸업생들은 취업원서를 들고 KTX역과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청년을 구출하라!’는 이 시대의 특명을 권영진 시장이 받았다. 한국 최초로 공기업 임금피크제를 전격 실시하기로 노사정 합의를 성사시킨 것이다.

 대구 5개 공기업, 총 3000여 명이 임금피크제를 수용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이 당찬 결의는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는’ 성리학적 안민(安民)사상의 현대적 발현이고, 소민(小民)이 수분공역(守分供役) 하도록 생계수단을 나눠야 한다는 대동(大同) 사상의 실행이다. 뭐 그렇게 거창하냐고? 아니다. 이런 혁신적 결단이 없으면 지난 9월 임시 타결된 노사정 대타협의 ‘청년 구하기’ 효과는 그야말로 미미하고, 경제침체 터널을 벗어날 출구는 차단된다. 2017년부터 발효될 ‘60세 고용연장법’이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조항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97%를 점하는 중소기업은 주저앉는다. 청년 일자리는 물론 한국경제의 터가 파괴된다는 말이다.

 아직 미생(未生)인 노사정 타협안을 완생(完生)으로 만드는 벅찬 과제를 국회와 민간에 떠넘긴 채 방관하는 한국의 모든 공공부문 철밥통들에게 경종을 울린 대사건이 이것이다. 권영진 시장은 도시철도공사를 여덟 차례 방문했다. 10년 전,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해 일방적 독자노선을 걸어온 민주노총 소속이기 때문이다. 권 시장은 시청사에 ‘없다’. 그의 집무실은 현장이고, 그의 시정(市政)은 협치이며, 그의 목표는 협업이다. 지난 메르스 사태 땐 아예 야전침대에서 새우잠을 잤다. 회의는 밤 9시, 불철주야의 방역행정에 은밀히 침투한 메르스 바이러스는 죽었다.

 “물산업은 21세기 경제를 이끌 블루골드(Blue Gold) 산업입니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권 시장은 ‘대구를 살려내라!’는 시민 특명에 기업가적 답을 내놨다. 21세기 물 시장이 반도체와 조선업보다 두 배 이상 크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뜨인 권 시장은 상하수, 폐수, 담수, 생수 관련 세계 중심을 구축한다는 포부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낙동강 페놀 사건이 쓰라린 교훈이 됐다. 여의도정치에서 습득한 10년 내공이 시장실 벽면에 걸린 5개 첨단산업단지 설계도에 가득 스몄는데, 속속 체결하는 외국기업 입주계약에도 아직 배가 고프다. 시민들도 화답하는 중이다. ‘된다! 대구’로. 대구가 오랫동안 갇혀 있던 독(甕)은 깨졌다. 자존은 권력이 아니라 서민이 먹을 밥, 현실 타개를 위한 실용, 사익 자제의 혁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시장과 시민이 수차례의 협치를 통해 깨달은 결과다.

 대구시 대봉동 방천시장에 김광석길이 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청년들의 가슴을 먹먹한 목소리로 울려주던 가수.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사랑을 잃었는데 직업도 없는 ‘거리에서’ 헤매면 비참하다. 몇 년 뒤 ‘서른 즈음에’ 사랑을 찾고 직업도 얻은 청년들이 돌아와 그 애절한 노래를 다만 추억으로만 부르길 바란다. ‘조금씩 잊혀져 간다 /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비어가던 내 가슴 속엔 /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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