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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 동네 문화사랑방으로 되살아나다

중앙일보 2015.10.13 00:03 라이프트렌드 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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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녹번동에 있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윤성근씨가 고객에게 책을 찾아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다. [프리랜서 김정한]

작은 책방

필요한 책이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거나 대형 서점에 간다. 이런 이유 등으로 하나둘 간판을 내렸던 작은 책방이 최근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사람과 소통하고 희소성 있는 책을 보며 독서 모임도 할 수 있는 작은 책방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개성 있는 아늑한 공간

서울 연남동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책방 피노키오’.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림책들을 판다. 그래픽 노블부터 해외 작가의 원서까지 다양하다. 서울 옥인동 ‘길담서원’은 다양한 독서 모임을 통해 깊이 있는 책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 홍대 앞 ‘정원이 있는 국민책방’이나 성수동에 있는 ‘카페 성수’는 북카페 형태로 운영하며 커피와 책을 함께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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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발간 150주년을 기념해 기획전을 열고 있다.

상암동 ‘북바이북’은 맥주나 글라스 와인을 가볍게 즐기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북바이북 김진양 대표는 “퇴근 후 별다른 낙이 없는 직장인에게 여유를 전해줄 수 있는 문화 충전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서울 녹번동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오후 3시에 느지막이 문을 연다. “왜 하필 3시냐”고 물으면 주인장 윤성근씨는 “무엇을 하려고 해도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각이 바로 오후 3시”라며 사르트르의 장편소설 『구토』 중 한 구절을 인용해 답한다. 그의 대답처럼 알 듯 말 듯, 그런 ‘나른함’과 ‘느림’의 감성으로 채워진 공간이 바로 작은 책방이다.


누리꾼들 동네 서점 지키기 활동

최근 사라져 가는 ‘동네 서점’을 지키려는 누리꾼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내 60여 개 동네 서점 위치와 정보를 공유하는 ‘동네 서점 지도(Bookshop Map in Korea)’가 지난달부터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퍼지고 있다. 이는 독립출판 관련 앱 개발업체인 퍼니플랜에서 구글 지도를 이용해 만든 온라인 지도로, 자신이 알고 있는 동네 서점 정보를 직접 입력할 수도 있다.

지난 7월 파주교하도서관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전국 주요 여행지의 특색 있는 서점과 책방(북카페), 출판사를 소개하는 특별한 전시를 열었다. 휴가 시즌 동네 책방을 들러보라는 캠페인성 기획이었다. 국내 여행 명소 가운데 독특하고 유서 깊은 서점 21곳과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출판사 등 27곳이 소개돼 작은 책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자세한 목록은 파주교하도서관 블로그(gyohalib.tistory.com)를 통해 확인 가능].

대형 서점에 없는 특별한 책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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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염리동 책방 ‘일단멈춤’에서 만날 수 있는 여행 서적들.


5~10평 규모의 작은 책방들은 특별한 타깃이나 장르에 한정한 책들을 소개한다. 더북소사이어티(서울 통의동)나 SIMJI(논현동)처럼 디자인과 건축, 예술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판매하는가 하면, 베로니카 이펙트(상수동)처럼 그림책만 파는 곳도 있다. 일단멈춤(염리동)은 여행과 관련된 책만 판다. 대형 서점에 없는 에세이와 세계적 작가의 원서, 개인이 기획부터 제작까지 혼자서 만든 독립 출판물을 구비해 차별화하기도 한다. 그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책들이다. 멀티 공간이 대세인 만큼 책방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오디너리 북샵(성북동)은 ‘토토마켓’이라는 이름으로 플리마켓을 진행한다. 서점 내 작은 공간인 ‘성북 작은 가게당’에서는 독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워크숍이 열린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독서 모임과 음악회를 정기적으로 연다. 워크숍에 자주 참여한다는 주부 김혜선(35)씨는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쉽게 참여할 수 있어 좋다”며 “책을 만지며 읽고 의견을 나누는 일은 사람의 감성을 품격 있게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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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바이북’(서울 상암동)의 책 사이에 끼워진 고객 서평 메모 ‘책꼬리’.

특정 주제 서적 구비
주인·손님 어울려
책 얘기, 독서 모임


마음 맞는 사람과 소통하는 곳

작은 책방 주인들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뭘까. 바로 “유지가 되느냐” “먹고살 수는 있느냐”다. 손님이 몰릴 때는 하루 20팀, 아예 없는 날도 있다. 매월 임대료와 인건비 정도 뽑아내는 때도 있고 적자가 나기도 한다. 주인들은 하나같이 “큰 돈벌이를 생각하고 문을 연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점을 거점으로 출판과 강좌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다. 더북소사이어티 임경용 대표는 대학에서 강의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이나 글쓰기 강의를 한다. 책의 저자로 활동하는 주인들도 있다.

작은 책방에는 있고 대형 서점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들과의 교류다. 직장인 김성훈(39)씨는 “책에 대해 대화할 사람을 만나거나 읽을 만한 책을 추천받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경험이 됐다”며 “책방 주인장과 또 다른 단골들과 마주 보며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감성을 채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작은 책방”이라고 강조했다. 》 관계기사 2, 3면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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