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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진 않지만 마냥 못된 놈은 아닌

중앙일보 2015.09.23 13:01
[커버스토리|‘성난 변호사’ 이선균] 정의롭진 않지만 마냥 못된 놈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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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이라 불리는 변호사 변호성은 승소 확률 100%를 자랑하는, 대형 로펌의 에이스다. ‘이기는 게 정의’라고 믿는 그는, 수임료를 두둑히 챙겨주는 의뢰인에게 승소의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시체도, 증거도 없는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변호에 나선 호성은 기민한 솜씨로 용의자의 혐의를 벗길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 여느 때처럼 승리를 확신한다. 하지만 용의자가 법정에서 자신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자백하면서, 증거 조작 의혹과 함께 인생 최대의 위기에 빠진다. ‘성난 변호사’(10월 8일 개봉, 허종호 감독)는 자존심이 짓밟힌 호성이 벌이는 통쾌한 반격을 그린 영화다. 배우 이선균이 자유분방한 날라리 에이스 변호사 호성 역을 맡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에 경쾌하면서 긴박한 리듬을 얹는다. 추격 스릴러 ‘끝까지 간다’(2014, 김성훈 감독)를 통해 섬세한 로맨틱 가이의 이미지를 떨쳐낸 그는 이번 영화에서 또 다른 연기 변신을 한다. 아직도 도전에 굶주렸다는 듯, 내년에 누아르와 사극에도 출연하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에서 단단한 승부욕이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라는 짧은 인사 한마디에 스튜디오에 있든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집중됐다. 독특한 음색의 울림 좋은 목소리는 편안한 연기와 함께, 배우 이선균(40)을 규정하는 인장이다. 살이 빠져서 그런지, 그의 동안(童顔) 외모가 더욱 돋보였다. “촬영 앞두고 술 끊고 유산소 운동만 해도 5~6㎏은 금세 빼요. 날씬한 모습으로 촬영장에 가서 평소 ‘배우 몸매가 왜 이래’ 하고 놀리던 스태프에게 ‘나, 배우 맞지?’라고 자랑질하죠. 푸하하.” 그는 영화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맡아 부담이 크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솔직하고 유쾌한 입담은 그대로였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끝까지 간다’의 성공 이후 시나리오가 제법 들어온다. 로맨틱과 멜로에 치중됐던 장르도 더 넓어지고, 내 비중도 커졌다. 그중에서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어려운 법정신이 있기에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나리오도 재미있었다.”

-허종호 감독이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이라 들었다. “전공도 다르고 내가 선배지만, 동갑이라 친구처럼 지냈다. 영화에 관심 없을 때 그 친구의 단편에 출연했는데, 재즈 CD를 선물로 주더라. 처음으로 받은 영화 개런티였다. 둘 다 영화판에 10년 넘게 있다 보니, 함께 영화를 찍게 됐다.”

-사실상 단독 주연이다. 부담이 크진 않았나. “허 감독이 그러더라. ‘이번엔 조진웅이 없다’고. 내가 혼자 끌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부담이자 행운이라 생각한다. ‘끝까지 간다’ 이후 내 역할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이 커졌다. 그 영화가 손익분기점인 관객 200만 명을 넘겼을 때, 김성훈 감독과 낮술 마시며 울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부담과 스트레스가 컸던 거지.”

-이번 영화도 ‘끝까지 간다’만큼 빠르고 경쾌하게 진행된다. “‘끝까지 간다’는 고건수(이선균)와 박창민(조진웅)의 대결 구도가 주는 긴장감이 팽팽했다면, 이 영화에는 반전과 또 한 번의 반전이 주는 재미가 있다. 감독과 2박 3일간 대본 회의를 하면서 정말 ‘박 터지게’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만큼 서로 부담이 컸다. 난 원톱으로서 책임질 부분이 많아졌고, 감독 또한 전작 ‘카운트다운’(2011)의 결과가 안 좋았기에, 이번 영화는 잘돼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결국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가볍고 경쾌하게 나왔다. 변호성 캐릭터가 주는 재미도 많아졌다.”

-‘끝까지 간다’의 건수와 호성의 공통점은 그다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맞다. 건수는 적당히 때가 묻은 경찰인데, 원래 못된 놈은 아니다. 어떤 상황을 모면하려다 더 큰 곤경에 빠진다. 호성은 변호사로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의뢰인이 승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직업관에 투철하다. 그 또한 곤경에 처하지만, 상황을 뒤집기 위해 애쓴다.”

-법정신 연기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변호인’(2013, 양우석 감독)의 송강호, ‘의뢰인’(2011, 손영성 감독)의 하정우 등 쟁쟁한 배우들이 먼저 법정신 연기를 했기에 부담스러웠다. 법정신 중 최고의 리얼리티를 살린 ‘소수의견’(6월 24일 개봉, 김성제 감독)을 보고서도 많이 걱정했다. 리얼리티를 걱정하는 감독에게 ‘우리 영화는 두 번 볼 영화는 아냐, 그냥 재미있게 찍자’고 했다. 리얼리티를 앞세웠다면, 호성이 운동화 신고 법정에 서겠나.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법정신이 들어 있는, 유쾌한 반전 추격극이란 걸 강조하고 싶다(웃음). 호성의 법정신은 원맨쇼다. 배심원들을 상대로 리듬감 있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설교와 김제동 토크쇼 등을 참고했다.”

-날라리 변호사 룩을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냈나. “감독은 스키니 바지에 징 박힌 운동화 등 ‘빅뱅’ 스타일을 원했는데, 그건 지나치다고 했다. 깔끔한 양복에 운동화를 신고 선글라스를 쓰자고 제안했다.”

-이런 류의 반전 추격 스릴러가 제법 잘 어울리는 이유는 뭘까. “곤경에 처할 때의 호흡? 하하하. 다른 영화 찍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려 한다. ‘끝까지 간다’도 분명 장르영화지만, 멋부리고 무게 잡는 게 싫었다.”

-이번 영화는 흥행 면에서 어디까지 욕심나는가. “‘끝까지 간다’는 관객 345만 명이 봤는데, 5만 명이 정말 아깝더라. ‘성난 변호사’는 관객 350만 명을 찍었으면 좋겠다. 1000만 한국영화가 올해 세 편이나 나왔지만, 중박 영화가 없는 건 문제다. ‘끝까지 간다’처럼 허리가 되는 영화가 있어야 한다.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내가 중박 영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홈런까지는 아니어도 꾸준히 안타를 쳐야지.”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남자 배우들이 대부분 거쳐가는 깡패 연기와 사극을 한 번도 안 했는데, 내년에 두 장르에 도전한다. 누아르영화 ‘소중한 여인’(가제, 이안규 감독)에서 김혜수 선배와 호흡을 맞추고, 사극영화에도 출연한다. 찌질하고 현실적인 인물을 많이 맡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내년에 누아르에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런 것에 부딪혀 봐야, 40대에도 여러 역할이 들어오지 않겠나.”

-홍상수 감독 영화에는 출연 계획이 없나. “홍 감독님 영화 속의 나를 보면 짜증날 정도로 싫을 때가 있다. 너무 나 같아서. 우울한 상태에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3)을 찍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더 우울해져서 술 마시고 싶더라. 솔직한 게 홍 감독님 영화의 매력이다. 감독님 영화에 같은 배우가 계속 나오는 건 좋지 않다. 새로운 배우가 들어와야 질감과 톤이 바뀌니까. 올봄에도 감독님이 갑자기 전화해서 ‘김주혁과 영화 찍는데, 너 잠깐 나올래?’라며 콜을 하셨다. 가족과 휴가 중이어서 고사했다. 정말 다행이었지(웃음).”

-동안이지만 이제 눈가에 제법 주름이 잡힌다. “아내(배우 전혜진)는 주름 많다고 뭐라 하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최민식 선배처럼 멋진 주름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목소리가 좋은 게 장점으로만 작용하진 않을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어느 교수님이 ‘넌 70년대 배우의 발성이어서, 연기 못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두껍고 울리는 내 목소리에 콤플렉스를 느낀 적도 있다. 각 잡고 힘주면 느끼하기 때문에 좀 더 풀어지게 연기하려 했고, 그런 연기를 더 좋아했다. 역할에 따라 운용을 잘해야 하는 목소리다. 누아르와 사극 연기를 할 때 목소리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해야할 것 같다.”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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