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에게 평화란 ‘삶의 존엄’ 위한 기본 조건

중앙선데이 2015.10.11 00:24 448호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지난 9월 16일부터 21일까지 연세대 동아시아평화센터 주최, 네이버 문화재단 후원으로 ‘동아시아 보편평화 구상’이라는 주제의 회의가 열렸다. 조금 늦은 감이 있으나 그 회의에 있었던 발표들을 들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약간 적어 볼까 한다.


[빠른 삶 느린 생각] 평화의 이상에 이르는 길

평화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의 문제이고 국가 간의 문제이다. 또는 가장 깊은 의미에서 개인의 삶에서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왜 평화가 중요한가? 간단히 말한다면, 평화는 삶의 근본 조건이다. 삶의 여러 요인들에 마음을 열어 대비할 수 있게 하고, 그 요인들의 조화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기본 조건이 평화이기 때문이다. 삶의 향수(享受)뿐만 아니라 여러 창조적 성취도 평화를 조건으로 한다. 물론 갈등과 투쟁과 전쟁이 삶의 에너지를 분출케 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안정된 사회질서가 붕괴된 곳, 또는 지나친 안정이 삶의 에너지를 완전히 침체 상태에 떨어지게 하는 곳에서는 갈등의 에너지에 대한 열망이 솟아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평화가 삶의 기본 조건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평화가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시점에서 전쟁이나 갈등상태에 들어가 있다는 말이지만, 평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 요인들로 하여 평화가 위협을 받는 상태에 있을 수 있다. 그 원인의 하나는 과거에 있었던 부정적인 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현실적 원인에 추가하여, 과거에 있었던 일에서 생긴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보다 안정된 평화 체제의 수립을 어렵게 하는 수도 있다. 현실 원인에 더하여 심리적 원인이 있는 것이다. 가령,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서 일어난 ‘성노예’ 문제는 어느 정도는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번 평화 문제 회의의 발제에는 이러한 문제들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어떤 발제는 특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북아일랜드 문제 뿌리도 역사의 기억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의 제랄딘 스미스 교수의 발표는 평화를 정치적 세력 간의 타협과 균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인간 심성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쟁보다 지배세력과 피지배 세력 간의 갈등에서 일어난 문제들이 어떻게 청산되고 온전한 평화 관계의 회복으로 유도될 수 있는가를 다루었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이 과정이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이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아일랜드의 사정을 조금 역사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불가피하다.



지금의 시점에서 전쟁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북아일랜드는 완전한 또는 정상적인 평화가 있는 지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일랜드의 복잡한 역사가 그럴 수밖에 없게 한다. 그로 인하여, 나라와 나라, 종교와 종교, 정치 이념과 이념 사이에 갈등과 긴장이 있고, 이에 따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갈등과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작용하는 복잡한 원인들을 다 가려내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큰 테두리는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밖에서 들어오는 세력의 희생물이 되어 온 것이-특히 지난 400년 간 영국의 식민지 지배의 희생물이 되어 온 것이 아일랜드이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와서야 아일랜드는 ‘자유국’이 되었지만, 그때 주권을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었고, 1948년에 모든 의미에서의 독립국이 되었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독립은 식민통치의 문제를 완전히 정리한 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일랜드라는 섬 전부가 아일랜드 공화국의 영토가 되지 않고, 북부 아일랜드가 그대로 영국의 영토로 남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조건을 거부하는 집단이 생기게 되었다. 이 집단의 일부는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기억엔 용서에 저항하는 은밀한 요인 있어분단 독립이 기정사실이 된 다음에도 무장 투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무장 집단은 북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들과 소수파인 가톨릭파와의 패권 다툼에 가담했다. 이 신구 기독교의 종교적 차이는 물론 영국계 주민과 아일랜드 원주민 사이의 차이이기도 하다. 이 두 집단의 갈등은 모든 부분에서 그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산다는 사실에 의하여 심화되었다. 교육·고용·주택·결혼 등에 있어서 그들은 서로 다른 구역을 이루고, 가톨릭-아일랜드계는 불리한 위치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사정에서 오는 갈등은 1960년대 말로부터 ‘동란 상태(Troubles)’라고 불리게 된 준(準)내란상태로 발전하고, 그것이 30년 간 지속되었다. 1998년에 이르러 영국과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의 여러 정당 간의 합의에 의하여 화해의 협약이 이루어지고, 동란은 일단 종결되었다. 그러나 올해 있었던 북아일랜드 경찰관 총살 사건 등으로 하여, 다시 동란 사태가 재발할 우려가 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등을 규정하는 가장 큰 테두리는 물론 400년 간의 영국의 식민지 지배이다. 이러한 장기 지배는 그에 관련된 사실들을 복잡하게 얽히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북아일랜드 문제는 긴 식민 통치하에서 이주해온 영국인들이 아일랜드의 주민으로 정착한 사실에 관계된다. 아일랜드 독립에 임하여, 그들이 자기들대로의 영토를 가지고자 한 것이 북아일랜드 분리의 근본 원인이다. 그렇다고 영국계의 아일랜드인이 아일랜드를 저버린 이국인으로 남은 것은 아니다. 문제의 착잡성은, 가령, 근대 아일랜드의 가장 유명한 시인 예이츠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영국계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집안 출신이었지만, 그 나름의 아일랜드 애국자였다. 그를 반드시 정치적 시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로저 케이스먼트라는 충실한 영제국의 신민(臣民)이었다가 민족 해방 운동의 주도자가 된 사람의 사형에 대한 그의 분노를 표현한 시, 또는 1916년의 ‘부활절 봉기’를 주제로 한 시는 그의 날카로운 애국의식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예이츠 못지않게 20세기 영문학 또는 영애란(英愛蘭)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보다 순수한 아일랜드 혈통으로 가톨릭 교육을 받고 가톨릭 신부가 될 생각도 한 사람이지만, 정치적 분규에 휘말리는 것을 혐오하여 해외로 망명하였다. 영문학에 기여한 아일랜드 출신의 인물이 많지만, 이들의 배경에는 대체로 아일랜드와 영국의 착잡한 관계가 얽혀들어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정황으로 보아서도 스미스 교수가 북아일랜드 그리고 아일랜드에 진정한 평화가 오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넘어서 보통의 삶의 구체적 차원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럽다. 평화가 없는 곳에는 그것을 없게 만든 역사의 기억이 있다. 진정한 평화가 있으려면, 역사의 기억의 문제가 풀려야 한다. 그것은 옛날의 일을 다시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물론 부정적인 기억은 적대의식을 조장하여 집단의 단결을 강화하고 투쟁을 선동하는 데에 중요한 정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의도가 없다 하여도, 폴 리쾨르의 생각을 빌려 말하건대, “기억은 용서에 저항하는 은밀한 요인”을 가지고 있다.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동정의 공간 만들어야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기억의 첫 작업은 과거의 불행에 대한 애도의 절차를 취하는 것이다. 그 다음 치유 그리고 달라진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인(是認)이 뒤따라야 한다. 스미스 교수는 ‘화해와 용서’에 이르는 기억의 작업으로 ‘윤리적 기억,’ ‘도덕적 기억’을 말한다. 이 작업을 통하여 타자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동정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용서가 가능해진다. 윤리적 기억은 인척이라든가 친구의 괴로움에 대한 공감을 내용으로 한다. 도덕적 기억은, 스미스 교수가 정의하는 바로는, 그러한 친소(親疎)의 한계를 넘어, 인간적 유대를 모든 인간에게 확대하는 기억의 작업이다. 그리하여 기억은 “치유와 재생(再生) 그리고 보편적 인간성에 기초한 도덕적, 정신적 가치의 공유”에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스미스 교수의 이러한 발표를 접하면서, 또 한 가지 감명 깊었던 것은 그가 이러한 화해의 작업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여러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아일랜드의 더블린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를 왕래하면서, 각종의 종교단체, 시민 단체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인간적 접촉을 통하여, 그가 생각하는 바 기억과 화해의 작업들을 장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스미스 교수의 발표 이외에도 이번 평화회의에서 발표된 글에는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도 베르너 페니히 베를린자유대학 교수의 발표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독일 통일이, 얼마나 상호이해와 타협을 위한 한없는 인내를 통하여 이루어졌던가를 잘 이해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우리의 통일문제에 대하여도 참고할만한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미 우리의 통일부에 자문도 하고 자료도 제공한 바 있다. 이번 회의에서의 그의 발표는 여기에 관련되는 것이면서, 조금 더 생각을 확대하여 일본이나 중국과의 관계, 그리고 여러 국제 관계에서의 평화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발표 전부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기 때문에, 위의 스미스 교수의 발표와 관련하여 그의 발표에서 취한 한두 가지 아이디어만을 언급하겠다.



제도·전략에 앞서야 할 평화의 이상적대하는 두 진영의 화해 과정에 대한 스미스 교수의 말은 주로 피해자의 관점을 취하여, 가해자가 피해자와 함께 과거를 기억하고 화해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뉘우칠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페니히 교수는, 한·일 관계를 말하면서, 가해자가 뉘우치지 않는다고 하여 평화에 이르는 과정을 포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진정으로 지역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후회나 사과를 기다리지 않고 관대한 마음으로 평화에 이르는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 관용의 마음은 타자를 탓하지 않고 부끄럽게 한다. 비난이 아니라 수치심이 심리적 계기가 되는 것이다. 페니히 교수의 생각에서 또 주목할 것은 제도적인 보장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다. 평화 계획의 목적은 잘잘못의 시비보다도 확실한 평화 체제의 확립이다.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평화 체제의 객관적 조건들이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와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깊은 심성 안에 들어 있는 평화의 이상에 대한 믿음이다. 사회적 국가적 문제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는 너무나 전략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한다. 정치적 차원에서나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목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여야 하는 것은 삶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이다. 평화는 그것을 위한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조건이다. 그 현실적 구현을 위한 전략은 평화의 이상을 고려하는 것이라야 한다. 지금의 단계에서, 제도와 전략에 대한 궁리와 협상에 앞서서, 필요한 것은 평화의 이상의 보편화라 할 수 있다. 국제 평화나 사회적 평화 어느 쪽에서나 이 보편화가 선행함으로써, 인간의 노력은 힘의 역학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