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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2035] TV 여기자의 비포 앤드 애프터 얼굴

중앙일보 2015.10.09 00:53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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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JTBC 국제부 기자

당신이 이 칼럼 한 귀퉁이에서 사진을 본 뒤, 길에서 나를 마주치더라도 아마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외모만 놓고 보면, 방송이나 프로필 사진 속의 나와 평소의 나는 사뭇 다른 사람이다. 기사에 붙은 사진을 보고 동료 기자 A의 지인이 “저 여기자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한 일도 있었다는데, A는 “사진 속 기자는 나도 낯선 인물”이라며 모른 체한 모양이다. 평소엔 굽 낮은 신발에 헐렁한 셔츠 차림이다. 몸에 딱 붙는 정장을 입으면 소화도 잘 안 되고, 기자로서 기동성도 떨어진다는 나름의 개똥철학 때문이다. 피부에 해주는 것도 없는데 매일 열 몇 시간을 화장으로 덮고 있는 건 독이다 싶어 선크림만 겨우 바르고 TV에 나오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현실은 참 얄궂다. 사건 현장에서 중계하는 남자 기자가 며칠째 면도를 못한 까칠한 얼굴로 나오거나, 매일 같은 잠바만 입어도 “고생이 많다” “멋지다”는 칭찬이 쏟아진다. 반면 현장에서 밥 먹을 시간도 없어 화장을 못한 여기자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너무 인색하다. 온에어 불이 꺼진 일상에서도 ‘좀 꾸미고 다니라’는 압박은 이어진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진실게임이 벌어졌다. 예전에 “너 혹시 남자니?”라는 질문도 받은 적이 있어서 각오는 했다. 하지만 “대체 옷장에 옷이 얼마나 없는 거냐”는 후배 녀석의 대담한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꾸미지 않는 내 모습이 주변에는 무신경함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회사원 친구들도 압박을 느낀다고 했다. 격한 회식을 한 다음 날이라든지 출근을 서둘러야 하는 날, 화장을 못하거나 렌즈 대신 안경을 쓰고 나가면 어김없이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한다. “어디 아프니?” 안 아프다. 작은 눈, 흐린 눈썹, 트러블 난 피부 다 부모님이 낳아주신 그대로다(정말 아픈 날은 아파 보일까 봐 외려 화장을 열심히 하게 된다). 왜 우리의 진짜 모습이 직장생활 에티켓의 ‘마이너스’가 돼버렸을까. 사실은 ‘민낯’이야말로 가감 없는 제로베이스, 화장을 한 얼굴이 플러스일 뿐인데 말이다.

 반세기 전과 비교하면 여자들이 몇 배는 더 바쁜 세상이 됐다. 화장까지 깔끔히 마치고 나가려면 준비 시간이 최소 30분은 더 길어진다. 주 5일 근무라 치면 1년에 140시간 정도 더 공을 들여야 하는 셈이다. 책을 열 권은 너끈히 읽을 시간이다. 겉모습에 민감한 사회에서 나고 자란 탓에 마음 한편, 민낯에 대한 두려움은 늘 있다. 예쁘게 꾸미면 좀 더 관대해지는 세상이란 건 알지만, 그것까지 욕심내기엔 너무 바쁘고 힘들다. 그러니 눈썹이 예쁘던 앞자리 동료가 오늘은 모나리자처럼 앉아 있어도, 혐오스럽다 놀리지 말아주십사 한다.

이 현 JTBC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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