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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박근혜의 ‘트럼프’ 공략법

중앙일보 2015.10.08 00:27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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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1950년 10월 19일 새벽 베이징(北京) 공항을 떠난 펑더화이(彭德懷) 중공군 사령관은 선양(瀋陽)을 거쳐 단둥(丹東)에 도착했다. 그날 밤 부교로 압록강을 건넜다(중국 관영 CC-TV 프로그램, 『압록강을 건넌 펑더화이』).”

 펑더화이의 하루 일정이지만 중공군 지도부가 느낀 전황의 급박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한반도 북반부에 잠입한 펑더화이 군대는 낭림산맥 좌우로 흩어져 매복에 들어갔다. 원산~평양을 잇는 이른바 ‘맥아더 라인’을 돌파한 미8군과 10군단은 낭림산맥 앞에서 갈라져 각각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전속력 진군했다. 두 부대 간 거리가 130㎞나 벌어져 포위 공격에 취약했지만 중공군 참전 변수는 무시됐다. 이후 사건은 잘 알려진 대로다. 미군 주력은 평안북도 운산과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일격을 당했다.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즐길 것으로 기대했던 미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을 터. ‘왜 우리가 이름도 몰랐던 이 땅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가’라며 혼란에 빠진 병사들. 미8군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매튜 리지웨이 장군은 답했다. “우리가 선출한 정부가 그렇게 결정했기 때문이다(일본육전사연구보급회, 『한국전쟁7권』).”

 이런 고민을 했던 병사들 가운데 미국 오대호 서쪽 연안 미네소타주 출신도 있었을 것이다. 맥아더 태평양사령관은 혹한의 한반도 전장을 견딜 수 있는 병사들을 요청했다. 유사 기후의 미네소타 장정들 10만 명이 차출됐다. 미 전쟁사에서 최악의 희생 중 하나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에서 미네소타 출신이 4000명 이상 전사했다고 한다. 전쟁이 멈춘 후에는 한국의 참상에 누구보다 밝았던 참전군인들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움직였다. 미네소타 가정에 2만여 명의 전쟁 고아가 입양됐다. 보통 인연이 아닌 것이다.

 미·일 동맹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미국이 유라시아 대륙의 양 날개로 삼는 안보 전략의 양대 주춧돌이다. 세계 전략 단위의 동맹은 아니지만 한·미 동맹에는 혹독한 한반도 북반부 골짜기에서 함께 사선(死線)을 넘었던 독보적인 기억이 새겨져 있다.

 미 대선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는 한국이 주한미군의 희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부상하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주한·주일미군인 것이 자명해지는 현실을 두고 미군의 시혜 운운하는 발언은 논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보수층 정서와 별개로 뜬금없이 그런 불만이 나올 수 있겠나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한국은 미·일이 빠진 중국 중심의 금융질서(AIIB)에 동참하고 전승절 열병식에 주빈으로 참관했다. 임박한 한·미 정상회담 일정 때 미국 여론을 파고들 필요가 생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저 먼 시골 미네소타 참전용사 가든을 찾아 동상 건립을 약속하고 헌화하는 건 어떨까. 참전군인과 가족들을 위로하는 장면도 봤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의 천안문 성루 사진을 넘어서는 한·미 동맹의 ‘이 한 장의 사진’은 이렇게 감성 코드로 풀어보면 어떨까.

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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