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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주진형의 다섯 가지 고백

중앙일보 2015.10.08 00:26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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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그는 고백의 달인이다. 맨 처음 고백은 “증권사는 모든 주식이 좋다고만 말한다”였다. 왜냐고? 그래야 해당 기업이며 주식 가진 투자자가 좋아하니까. “나쁜 주식이니 팔라”는 말은 금기어다. 그랬다간 기업이 돈을 빼고 투자자는 원망한다. 증권가에 매도보고서가 실종된 이유다. 덕분에 애꿎게 돈 날리는 소액투자자가 쏟아졌다. 주진형은 그게 싫었다. 매도보고서를 의무화했다. 보고서가 100개면 그중 일정 비율, 예컨대 10개는 반드시 ‘팔자’고 쓰도록 했다.

 두 번째 고백은 “증권사 전담 직원이 특별 관리해 주는 고객의 수익률이 더 나쁘다”였다. 고스톱판을 상상하면 된다. 판마다 고리를 뜯으면 어떻게 되나. 결국 하우스 주인만 돈을 번다. 내가 따면 상대가 잃는 제로섬이 아니라 (하우스 주인 빼고) 모두 루저가 되는 마이너스섬 게임이 되는 것이다. 증권사는 이를 점잖게 수수료라 부른다. 주식을 빨리, 자주 사고팔 게 할수록 고리도 많아진다. 증권사 직원이 자기 고객의 매매회전율을 월 600%씩 올리는 이유다. 이를 전문용어로 과당매매라 부른다. 주진형은 과당매매를 금지했다.

 세 번째는 “투자 보고서는 고객이 못 알아보게 쓴다”였다. ‘시장 리레이팅 대비 버텀업식 접근’ ‘펀더멘털적인 모멘텀 측면에서…’ 따위의 말을 도대체 누가 이해하겠나. 고객은 물론 쓴 사람도 모르는 보고서가 수두룩했다. “이걸 누가 보라고 만드냐”고 물으면 “모호해야 나중에 책잡히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진형은 기자 출신과 소설가를 채용했다. 말을 바꾸니 내용이 달라졌다.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하는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누군가의 고백은 다른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 심하면 원망과 복수를 부를 수도 있다. 첫 번째 고백은 해당 기업과 주식을 가진 투자자를 불편하게 했다. 감히 내 주식 값 떨어지라고 공공연히 떠들어? ‘주진형 괘씸죄’가 생겼다. 두 번째는 큰손 고객을 화나게 했다. 믿고 돈을 맡겼더니 고리 떼는 데만 열중해? ‘고객 우롱죄’가 추가됐다. 세 번째 고백으로 애널리스트들은 초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사람이 됐다. ‘무시죄’도 더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아직 견딜 만했다. 죄목이 작고 원망도 국지적이었다.

 네 번째는 달랐다. 그는 “재벌 오너가 일감몰아주기 식으로 영업을 한다”고 고백했다. 그것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했다. 지난달 정무위원회에서 그는 “(계열사인) 한화S&C 말고 다른 회사와 거래하려다 압력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한화S&C는 김승연 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가진 회사다. “삼성물산 매도보고서 때문에 압력을 받았다”고도 했다. 이날 국감은 생중계됐다.

 네 번째 고백엔 ‘재벌 기밀 누설죄’가 적용됐다. 그룹은 그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려 했다. 임기가 7개월 남았지만 후임 사장을 내정 발표했다. 그는 임기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안 하던 언론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룹의 인사가 부당하다며 ‘동네방네’ 알렸다. 그룹 측은 그러자 “입 다무는 조건으로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다섯 번째 고백은 “증권사가 큰손 고객을 역차별한다”였다. 수수료를 거래 금액에 비례해 떼다 보니 거래 단위가 큰 고객이 수수료를 더 많이 부담하는 모순이 생겼다. 예컨대 수수료가 1%라면 1000만원짜리 거래는 10만원, 1만원짜리 거래는 100원이다. (증권사가 부담하는) 건당 거래 비용은 같은데 수수료는 큰손 고객에게 1000배를 더 받는 셈이다. 주진형의 ‘시스템 선택제’가 여기서 나왔다. 온라인 거래는 1만원짜리든 1000만원짜리든 수수료를 똑같이 받고, 직원 성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오프라인 상담 고객은 더 비싼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자 직원들이 반발했다. 고객에게 멋진 컨설팅할 능력 있는 소수 직원은 살아남겠지만 대다수 장삼이사 직원은 어쩔 것인가. 가장 무겁다는 ‘사람 차별죄’가 추가됐다. ‘밥그릇 뺏는 사장은 필요 없다’ ‘독불장군 엘리트 자본주의자 물러가라’. 직원들이 피켓을 들었다. 그룹과 직원 양쪽 눈 밖에 난 주진형, 그는 과연 여섯 번째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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