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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인공지능의 발전에 담긴 함의들

중앙일보 2015.10.08 00:23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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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

과학과 기술이 점점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 삶도 점점 빠르게 바뀐다. 끊임없이 가속되는 변화에 맞춰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니 사람들은 지치게 된다.

 ‘느리게 살자’는 주장이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이런 사정에 대한 반작용이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외면하는 일은 부질없다. 더러 개인들이 각박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지친 심신을 추스를 수는 있어도, 사회 전체가 문화의 진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이런 변화를 부르는 것은 물론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본질은 인공지능(AI)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이해는 우리가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명체들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한다. 기본적 적응은 유전의 수준에서 나온 본능이다. 지구 생태계를 이룬 종들의 대부분은 본능만으로 삶을 잘 꾸려 간다.

 본능은 예측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들에 대한 적응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작은 변화들에 대한 적응은 뇌에 바탕을 둔 지능이다. 지능을 갖춘 종들은 생태계의 5 퍼센트가량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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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동물들은 개체들의 적응만으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 그런 종들이 갖춘 사회적 수준의 적응은 문화다.

 이처럼 유전자들에 담긴 본능, 뇌에 바탕을 둔 지능, 그리고 사회의 문화를 두루 갖춰야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다. 인류는 그 일에서 가장 뛰어났고 덕분에 생태계의 중심적 종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이름 그대로 지능의 일종이다. 사람의 지능과 성격이 같고 대등하게 작용한다. 그것은 기술이지만 이전의 다른 기술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거기에 인공지능의 혁명성이 있다.

 사람의 지능은 더 나아지지 않지만, 인공지능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자연히 인공지능은 점점 사람의 지능을 대치하게 된다.

 이미 여러 분야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사람의 지능을 보완한다. 전문가 체계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들은 전문가들이 참고하는 규칙들과 자료들을 정리해 판단할 뿐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능력까지 갖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이런 추세에서 상징적 사건은 이미 한 세대 전에 나왔다. 위상수학이 초기에 이룬 성과들 가운데 하나는 ‘4색 추측(four color conjecture)’의 증명이었다. 맞닿은 지역이 같은 색이 아니도록 지도를 칠하는 데는 네 가지 색들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간단해 보이는 이 추측의 증명은 힘들어서 1976년에야 이루어졌다. 그러나 증명의 과정이 너무 방대해 컴퓨터 프로그램만이 따라갈 수 있다. 가장 높은 지적 활동인 수학적 증명에서 지능과 인공지능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셈이다.

 사람의 지능은 뇌의 크기에 의해 제약된다. 인공지능은 그런 제약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점점 발전할 것이고 언젠가는 의식을 갖추고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으로 진화할 것이다.

 사람의 뇌는 10의 44승 비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현재 가장 큰 컴퓨터는 10의 14승 비트를 저장할 수 있다. 아직은 차이가 크다. (참고로, 우주는 대략 10의 100승 비트를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인공지능의 뇌가 아니라 신경세포에 해당된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들 모두가 인공지능의 뇌다. 사물인터넷이 보급되면 그 뇌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초지능은 그렇게 커진 물질적 바탕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바로 생명이나 의식이 나온 창발적 과정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과학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과 버너 빈지가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생명의 본질은 정보처리며, 진화는 생태계의 정보처리 능력을 늘린다. 따라서 인간보다 정보를 잘 처리하는 종의 출현은 논리적이다. 생태계의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처리의 향상이지 어느 종이 그것을 맡느냐 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초지능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생물적 종이 될 것이다. 과학소설가들은 이미 호모 로보티쿠스(Homo roboticus)라는 이름을 지어놓았다.

 그렇게 뛰어난 인공지능이 나타난 세상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가 될까? 중요한 결정들은 모두 초지능이 내리는 상황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과연 초지능은 인류에게 호의적일까?

 인공지능이 미치는 영향을 우리는 주로 경제 분야에서 느낀다. 전통적 일자리들은 많이 사라지는데, 새로운 일자리들은 적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한 사람들은 엄청난 소득을 올리지만, 다수는 적응이 어려워 소득 격차는 점점 커진다.

 그런 경제적 영향은 심각한 문제지만, 그 너머엔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실존적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나타날 호모 로보티쿠스와 호의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맺는 일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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